도예가 이종능 선생
‘토흔’이라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도예가 이종능 선생이 최근 가마에 불을 때고 있다. 지산도천방 제공
‘토흔(土痕)’이라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도예가 지산 이종능 선생(60). 그는 17일 경남 진주시 남강변에 우뚝 솟은 촉석루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흙을 처음 만졌을 때는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텅 비었습니다. 비워야 하는 숙제, 채워야 하는 고민 모두가 이 봄에 다시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토흔은 유약(釉藥)에 의존하던 기존 도자기 빚는 방식과 다르다. 대학 2학년 시절 지리산에 올랐다가 물기를 흠뻑 머금은 무지개 빛깔의 흙이 준 영감이 그 출발점이었다. 지산은 “중국과 일본 유명 요(窯)를 누비며 연구를 거듭했다. 태토(胎土·도자기를 만드는 흙)를 수집해 무수한 실패 끝에 1300도의 장작 불꽃에서 본래 흙의 느낌을 간직한 도자기를 만들어냈다”고 회고했다. 토흔은 흙의 질감과 색에 충실하면서도 독창적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지산은 토흔을 “흙의 흔적이자 세월의 느낌이며 간절한 기도”라고 압축한다. 영국과 미국, 일본 전시회에서도 “독특하고 따뜻하다. 인생을 보는 것 같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 전시회 출품작은 약 100점. 무엇보다 ‘꿈’ 시리즈가 눈길을 끈다. 그는 “인간 본연의 내면을 기하학적 추상 문양과 현대적 색감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2007년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선보였던 ‘백색 달 항아리’ 이후 이어지는 달 항아리 연작, 도자기 벽화도 관심이 쏠린다. 쑥부쟁이 시리즈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산은 고도(古都) 경주에서 태어났다. 중고교를 마치고 문화도시 진주로 유학했다. 지산도천방(芝山陶天房)을 열고 작업하는 곳은 경기 광주다. 낳고, 기르고, 성장시킨 곳 모두 이름난 고을이다. 8자와 인연도 많다. 1958년 개띠에 78학번, 개요(開窯)한 1988년 모두 그렇다. 지산은 “도예(陶藝)를 직업으로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영원한 길동무다. 항상 행복한 마음으로 도자기를 빚는다”고 말한다. 얼굴엔 늘 호기심이 가득하다. 새로운 것을 찾는 아이 같다. 작품 역시 자유분방하다. 전통 기법을 따라가지 않는다. 개척정신이다. 바탕엔 탄탄한 기본기가 있다.
지산은 이번 전시회에서 관람객과 함께 차를 마시며 만날 작정이다. 40년 전 진주에서 촉석루를 눈에 담으며 시작된 지리산의 흙과 불 이야기를 나누며. 지산은 “국내외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강의도 하면서 새로운 도예 인생 30년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010-5314-7477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