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에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했던 힘과 욕망이 고스란히 담겼다.―강남의 탄생(한종수, 강희용·미지북스·2016) 》
강남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외국인들도 말춤을 추며 외치는 게 그 이름이라 어린아이들도 모르기 쉽지 않다. 요즘처럼 ‘강남 불패’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집값이 미친 듯 치솟는 때엔 더 그렇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듯, 우리는 의외로 강남을 잘 모른다. 1968년까지 강남은 공중전화 하나 없던 시골이었다. 1969년 개통된 제3한강교(한남대교) 공사 당시 건설사 현장 사무실에 놓은 작은 발전기가 강남 최초의 전기 시설이었다. 과수원과 배추밭 천지였던 당시 강남은 자주 한강 물이 넘쳐 “남편이나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던 동네였다. 1970년대 신사동 땅값은 3.3m²당 약 200원이었다. 강북에 비하면 거저였다.
이랬던 ‘깡촌’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동네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 현대사가 깔려 있다. 강남은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발전할 수 있었다. 첫째는 사대문으로 몰려드는 인구와 도심 기능 분산이다. 이곳은 강북으로 몰려드는 외지인을 분산하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방파제였다. 토지 개발로 생기는 돈을 정치자금으로 쓰려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도 작용했다. 두 번째는 서울 도심과의 인접성이다. 강남과 구도심을 잇는 한남대교는 강남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하는 탯줄이 됐다. 세 번째는 강남 개발 시기가 국내에 자동차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라는 점이다. 사대문 안과 달리 처음부터 자동차 친화적인 도로망이 깔리면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강남을 지나는 경부고속도로는 강남 발전의 기폭제가 됐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