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한국新 김도연 인터뷰]‘샛별’ 김도연이 말하는 운동과 인생
21년 만에 여자 마라톤 한국최고기록을 갈아 치운 김도연이 19일 소속팀이 있는 대전 K-water 사옥에서 봄 분위기 나는 화사한 평상복 차림으로 거울 앞에 섰다. 손에는 하루 전 한국최고기록을 세울 때 신었던 운동화를 들었다. 대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오늘 아침에 눈 뜨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
“어제 일이 꿈이 아니라 기뻤어요. 어젠 너무 힘들어서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숙소로 돌아와서 쉬었어요. 온몸이 쑤셔서 밤새 잠도 못 잤어요. 발바닥에 물집 잡히고 발톱도 빠지고….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제가 한국최고기록을 깼다는 사실을 이제야 실감하고 있어요.”
―기사는 읽어봤나.
(고개를 끄덕이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워요. 과거엔 저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어요. 흔히 하는 얘기로 ‘국내용 아니냐’고들 했죠. 하지만 21년 만에 한국최고기록을 깨자 모두가 축하해 주네요. 감사합니다.”
“예쁘다고 하는데…. 풀코스를 완주한 뒤라 사진이 이상하게 나갔는데 예쁘다고 해 이상해요. 열심히 하는 모습을 예쁘게 봐준 것 같아요.”
―신기록 수립 후 드는 첫 느낌은….
“제가 한국최고기록을 세웠다고 인생이 달라질 것은 없어요. 제가 가는 길에서 하나의 목표를 이뤘을 뿐이에요. 계속 갈 길을 갈 것입니다.”
―이제 더 유명해질 것 같은데….
―향후 목표는….
“물론 올 8월 열리는 아시아경기대회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향해 달려야죠. 목표는 금메달이지만 감독님은 성적보다는 기록에 집중하라고 하십니다.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준비할 생각입니다.”
―김도연에게 마라톤은 무엇인가.
“뭐 다들 말하는 한계에 대한 도전이에요. 정말 힘들어요. 트랙 경기랑 확실히 다릅니다. 훨씬 강한 체력도 있어야 해요. 그동안 전 5000m와 1만 m에 집중했고 마라톤은 제게 새로운 분야입니다. 그래서 신선하기도 합니다. 기록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그에 따른 성과가 주는 성취감도 큽니다. 훈련은 힘든데 마라톤 대회 출전은 재밌어요. 트랙 경기를 할 때는 주로 동료 선수와 부모들이 응원했어요. 하지만 마라톤 대회에서는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응원해 줬어요.”
―힘들 땐 어떤 생각이 드나.
“그만두겠다는 생각요. 하하. 올 1월 전지훈련 때도 너무 힘들어서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울먹이며) 운동만 하는 기계인가라는 생각, 몸은 피곤하고…. 하지만 제가 시작했고 하고자 하는 것을 이뤄야 하기에 참았어요. 그리고 결국 이뤄서 이젠 행복해요.”
―왜 눈물이 났나.
“너무 힘든 상황을 다시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평소에도 그래요.”
김도연의 고교 시절 모습. 바가지 머리에 앳된 얼굴이 눈에 띈다. 김천성 서울체육중고교 육상 코치 제공
“다른 사람들이 ‘쟤는 5000m 선수야’ ‘마라톤은 못 할 거야’ ‘마라톤 체력이 아니다’라고 하던 평가를 생각해요. 그런 얘기를 들을수록 오기가 생겨요. 힘들 땐 그 사람들이 한 얘기를 떠올리며 승부욕을 되살립니다. 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달렸어요.”
―한국최고기록을 깨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나.
“솔직히 사람들이 부담을 많이 줬어요. 하지만 팀 주변에서는 편하게 해주려고 했어요. 소속팀 관계자들은 한국최고기록이란 언급도 안 했어요. ‘다음이 있다. 무리하지 말라. 몸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앞으로도 주위의 평가와 상관없이 지금처럼 부담 없이 달릴 겁니다.”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영화를 봐요.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 건 아니고 관객들이 많이 본 영화를 봅니다. 요즘 한국영화가 재미있더라고요. 음악도 들어요. 헤이즈와 아이유 음악을 좋아해요. 특히 아이유는 저랑 동갑인 데다 밝고 명랑한 노래가 많아 좋아요.”
―달릴 때도 음악을 듣나.
“훈련 땐 이어폰을 끼고 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음악을 들으면 달리는 리듬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어제도 어느 순간 마마무의 ‘별이 빛나는 밤’이 생각나 계속 흥얼거리면서 달렸어요. 그래서 그런지 달릴 땐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평소 취미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단체 생활을 하니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래서 분위기 좋은 카페에 혼자 가서 커피를 자주 마셔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해요. 아무 생각 없이 한두 시간 ‘멍 때리다’ 오면 기분이 좋아져요.”
―좋아하는 음식은….
“싫어하는 음식이 없다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보신탕 빼고 다 잘 먹어요. 힘든 훈련을 한 뒤에는 파스타 같은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을 먹어요. 탄수화물이 피로 해소에 좋아서요.”
―평소 본받고 싶은 선수가 있나.
“삼성전자 김성은 언니요. 제가 어제 깬 기록을 세운 권은주 선배님도 있지만 그분은 과거 분이고 성은 언니는 현 세대에서 가장 잘 뛰는 선수잖아요. 2013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27분20초를 기록하는 등 2시간20분대 기록도 많이 냈고…. 그래서 배우고 싶었어요. 팀이 달라 평소 인사만 하고 지냈는데 기회가 되면 만나서 많은 것을 묻고 싶어요.”
―지난해 강원도청에서 K-water로 옮겼다.
“계약 기간이 끝났고 새로운 팀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어요. 그때 김영근 감독님하고 통화하게 됐는데 믿음이 갔습니다. 감독님이 첫 통화에서 ‘5000m와 1만 m, 하프마라톤, 풀코스마라톤 한국기록을 깰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어요. 1만 m 빼고 다 깼으니 성공한 것 아닌가요?”
대전=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