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이어 평창패럴림픽 폐회식에도 등장한 석창우 화백
18일 평창 겨울패럴림픽 폐회식에서 석창우 화백이 그린 수묵 크로키 영상은 성화의 불을 끄는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감전 사고로 두 팔을 잃은 뒤 그림을 시작한 석 화백은 의수에 붓을 끼우고 작품 활동을 한다. 석창우 화백 제공
평창 패럴림픽에서는 석 화백이 영상 속에 등장해 평창 패럴림픽의 역동성을 상징하는 대형 수묵 크로키를 그리고 평창 올림픽 슬로건이었던 ‘하나 된 열정’을 써내려간 뒤 공중으로 내던졌다. 작품은 영상 밖의 올림픽스타디움 성화대 미끄럼틀에 내걸렸다. 이내 무대 바닥으로 흘러내려온 크로키 작품은 성화대를 닮은 작은 항아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도살풀이춤 무용수 양길순 씨가 든 흰 천에도 그대로 새겨졌다. 물결치던 비단 천이 무용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평창의 성화도 함께 꺼졌다.
평창 폐회식 퍼포먼스 영상은 촬영하는 데만 5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앞서 TV 광고로 홍역(?)을 치러 본 그에게는 한결 수월한 일이었다.
가장 신이 난 건 그의 아내 곽혜숙 씨(58)다. 석 화백은 아내를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사모님은 내가 TV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계속 말했는데 장애를 가진 사람이 광고에 나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우리 사모님은 계속 그랬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근 손자를 본 석 화백은 손자와 손녀를 돌보며 지내고 있다. 석창우 화백 제공
석 화백은 최근 미국 아들집으로 건너갔다. 지난해 12월 1일 새벽 손자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아들이 태어나서 커 가는 동안 내가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전기기사로 일하던 석 화백은 아들이 태어나고 두 달이 안 돼 감전 사고로 양팔을 잃었다). 손녀가 태어났을 때도 시간이 안 돼 사돈댁이 뒷바라지를 다 해 주셨다. 이번에는 우리도 가서 손주 좀 봐주자 했는데 패럴림픽 폐회식에서는 직접 퍼포먼스를 안 하고 영상 촬영 한다기에 잘됐다고 했다. 손녀가 아들과 공항에 나와서 나를 보고 ‘할아버지’라고 해서 너무 감동했다.”
두 팔이 없어진 그에게 처음 그림을 그려 달라고 했던 네 살배기 아들이 다시 아들을 낳을 만큼 세월이 흐르는 사이, 평범했던 전기기사는 수묵 크로키의 대가가 됐다. 퇴원 후 집에 있던 석 화백에게 어린 아들이 노트를 들고 와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한 게 석 화백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참새 그림을 본 가족들은 ‘손 있는 사람보다 더 잘 그린다’고 했다. 그림 배우길 적극 권한 건 아내 곽 씨였다. 석 화백은 전기 일을 하던 회사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이번 패럴림픽 동안 휠체어 컬링을 보고 석 화백이 그린 수묵 크로키. 석창우 화백 제공
석 화백은 화실 문을 두드릴 때마다 퇴짜를 맞았다. ‘다뤄야 할 물감도 많은데 손 없이 어떻게 그림을 그리겠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석 화백은 사군자를 생각해냈다. 먹 하나만 있으면 되겠다 싶었다. 그렇게 만난 스승이 효봉 여태명 선생이다.
“처음 사군자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여태명 선생님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을 안 하시기에 그럼 내가 포기할 때까지만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그러면 그렇게 하자 하셨다.”
사군자를 그리려면 서예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흥분해 붓과 서예 재료를 사왔는데 막상 대나무 붓은 의수 끝 쇠갈고리에서 자꾸 빠져나왔다. 시행착오 끝에 아예 붓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갈고리에 끼우게 됐다. 그는 의수도 생활의 편리가 아닌 그림을 편히 그리기 위한 모양으로 변형해갔다. 일상생활에서 그의 손이 돼준 부인도 큰 힘이 됐다.
“손녀가 꼭 우리와 같이 자요. 잘 때 의수를 벗으면 그 팔을 잡고서….”
평창=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