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
예를 들자면 이런 경우다. 한국 여성 친구 한 명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우연히 외국인 상사를 만났다. 친한 사이도 아닌 외국인 상사가 반갑다며 ‘유럽식 인사’로 볼에 뽀뽀를 했다. 내 친구는 몹시 불쾌함을 느꼈다. 그 외국인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보고 싶지만 알다시피 성희롱은 항상 가해자의 의도보다 피해자의 느낌이 더 중요하다. 서양에서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서울에 와서는 당연히 이곳 방식을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하니 나도 한국인 남성이 친해지려고 내 손을 잡을 때 움찔하고 싶어도 가만히 있었다.
언어적으로도 오해가 쉽게 생길 수 있다. 영어로 ‘글래머러스(glamourous)’라고 하면 보통 옷차림이나 모습에 대해 화려하거나 우아하다는 표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글래머는 속칭 ‘콩글리시’로 가슴이 크다는 표현으로 쓰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 단어를 쓰다가 오해를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마찬가지로 영어로 ‘hips’는 순수하게 ‘허리께’인데 콩글리시로는 엉덩이로 이해하니 곤란할 수도 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 여성도 미투 같은 상황을 상당히 자주 경험하고 있다. 뉴스에서 때때로 나오는 이주여성 성폭행 사건과 외국인 근로자 강간 사건뿐 아니라 매일 사소한 미투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내 친구 대부분은 길을 가다 러시아에서 온 성매매 여성으로 오인받아 본 적이 있다. 또 클럽에서 친구끼리 춤을 추다 갑자기 뒤에서 웬 남자가 허리를 잡고 불쾌하게 ‘부비부비’ 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영국에서 그렇게 한다면 뺨을 맞거나 음료를 뒤집어 쓸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영국 사람으로서 한국인에게 제일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는 ‘신사’다. 나는 스스로를 예의바르고 다른 사람을 잘 대하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요새 지속적으로 여러 미투 사건을 뉴스에서 접하다 보니 나 역시 살짝 반성을 했다. 당연히 내가 일부러 한 행동은 없지만 혹시나 누굴 무심코 불쾌하게 하진 않았을지 고민이 됐기 때문이다. 사실 영국 사람들이 한국인보다 욕을 자주 쓰는 편이고 한국식 욕의 뉘앙스를 잘 몰라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인 몇 명을 기분 상하게 한 적이 있었다. 또 영국에서는 지인 사이에 편하게 하던 ‘섹드립(성적 농담)’도 한국에 온 뒤로는 자제했는데, 어떤 자리에서 어떤 상대에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남성으로서 미투 운동을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고, 혹여나 ‘맨스플레인(man+explain·여성들에게 자꾸 설명하거나 여성을 가르치려 드는 남성을 일컫는 말)’처럼 보일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남녀 관계와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불쾌했었다. 벌써 20년 전인 그때는 ‘한국 여성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면 처음엔 거부할 테니 여러 번 계속 신청해야 수락한다’ ‘스킨십을 하려면 여성이 무엇을 하고 싶어도 쉬운 여자로 보일까 봐 안 된다고 계속할 테니 약간 강요해야 될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것이 불문율이라고 해도 나는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싫다고 하는 사람이 승낙하고 있다고 받아들이는 걸까?
당연히 한국에는 착한 남자도 많다. 그렇더라도 이 운동을 통해 안 그래도 차별받는 여성들을 더 하찮은 존재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된다. 벌써부터 뉴스에 여러 기사가 나왔다. 남자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봐 여직원과 출장 못 가겠다, 여직원을 안 뽑겠다 등의 내용이다. 친구 몇 명도 나에게 주변 대부분이 여직원이니 오해가 없도록 행동을 주의하고 단둘이 절대 있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하지만 그건 과한 것 같다. 남자들이 정욕을 억제하지 못할 정도로 유약한 존재인가? 아니다. 본능을 참을 수 있는 것은 짐승과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다.
폴 카버 영국 출신 서울시 글로벌센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