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경 마야인들은 옥수수를 변형시켜 개량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중남미 아메리카에선 옥수수의 조상인 테오신테를 재배했으나 먹기엔 너무 딱딱하고 알이 작았다. 그래서 더 나은 옥수수를 만들기 위한 기나긴 노력을 기울였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테오신테는 여러 번의 유전자 변형을 거쳐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식품인 옥수수가 됐다. 작은 옥수수 알갱이 하나에도 진화론적인 맥락이 닿아 있다.
오늘날 과거에 비해 지구상에 더 많은 유전자가 우연 혹은 필연으로 생긴 후 득실거리고 있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즉 유전자 변형은 진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더 튼튼하고 풍성한 열매를 얻기 위해 식물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데엔 대개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동물의 유전자를 변형한다고 하면 반감이 앞서기 일쑤다. 유전자는 식물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식물로 크로스되는 게 상식이다. 인간은 겨울에 딸기가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추위를 잘 견디는 북대서양 넙치의 유전자를 넣기도 했다.
유전자 변형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소뿔을 제거하려는 이유는 농장의 작업자나 다른 소에게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소뿔을 일부러 자르거나 불로 지져야 한다. 좁은 우리의 돼지는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는다. 이를 막으려면 살아있는 돼지의 꼬리를 일일이 잘라야 한다.
2006년 중국에서 처음 발견된 돼지 생식기 호흡기 증후군(PRRS) 바이러스로 인해 3개월 동안 212만 마리가 감염되었고 이 중 약 40만 마리가 폐사했다. 이 바이러스를 방어하기 위해 미국의 양돈 업자는 매일 100만 달러 이상을 쏟아야 한다. 그런데 단 하나의 유전자만 제거하면 돼지한테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생길 수 있다. 돼지에게나 인간한테 모두 도움이 되는 유전자 편집이다.
연구하는 쪽에선 이종교배로 뿔 없는 소를 탄생시키는 것과 유전자 편집으로 뿔 없는 소를 만드는 건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이미 수컷 돼지고기에게서 나는 불쾌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성체(成體)가 되지 않는 수퇘지를 만들어냈다. 뿔이 없는 홀스타인 얼룩 젖소도 탄생했다. 그 방법은 유전자 이식이 아니라 편집이다. 유전자 가위라는 건 원래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미생물의 방어기제였다. 이를 발전시켜 ‘크리스퍼-카스9’라는 유전자 가위가 개발되면서 유전자 편집이 가능해졌다.
유전자 이식은 외부에서 유전자를 가져와 전달하는 과정에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유전자 편집은 특정 부위만 잘라내고 교체하는 작업으로 사고가 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렇다고 유전자 편집이 완벽한 건 아니다. 유전자 편집을 거친 슈퍼근육 돼지의 경우 어릴 때 많이 죽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또한 유전자 편집을 했던 양이나 염소에서 표적이탈이 나타나 연구진을 당황케 했다. 유전자 가위가 특정 표적의 염기서열을 찾아가 잘라내고 교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뱀은 박테리아를 죽이는 단백질 유전자가 췌장에서 이빨로 옮겨갔다. 그게 더 나은 진화이고 이로써 더 많은 먹이를 잡아먹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약 10억 명 이상의 사람이 굶주리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동물이 고통받고 있다. 만약 꼬리 없는 돼지를 사육하는 게 인간이나 동물에게 정말 이득이 된다면 유전자 편집을 안 거칠 이유는 없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