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2017-2018 도드람 V리그’ 인천 대한항공과 대전 삼성화재의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가 열렸다. 대한항공 곽승석이 삼성화재 블로커를 피해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인천 |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명문구단의 조건은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를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다. 그런 관점에서 대한항공의 ‘도드람 2017~2018 V리그’는 결과를 떠나 의미를 생산한 시간이었다.
자타공인 우승후보 소리를 들었지만 1라운드 한때 꼴찌까지 떨어졌다. 전반기를 마쳤을 때만 해도 봄배구는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후반기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반격을 해냈다. 3위에 올라 기어코 봄배구 막차 티켓을 얻었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봄배구 시작은 또 위태로웠다. 삼성화재와의 플레이오프(PO) 1차전에서 완패했다. 3전 2선승제의 PO 일정을 고려하면 절대 불리한 상황이었다. 실제 PO 1차전에서 패한 팀이 역전을 해낸 케이스는 단 한번 뿐이었다.
가스파리니는 1차전 때와 달리 트리플크라운(25득점·4블로킹·3서브에이스)으로 다른 선수가 됐다. 한선수는 세터임에도 무려 5점을 올릴 정도로 온몸을 던졌다. 정지석은 4세트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마지막 서브에이스의 주역이었다. 센터 진성태와 진상헌도 클러치 블로킹 득점으로 가치를 발했다.
모두가 잘했지만 대한항공의 PO 2차전 세트스코어 3-1(25-18 23-25 25-18 26-24) 승리의 숨은 조력자는 따로 있었다. 레프트 곽승석(30). 그의 궤적을 아는 사람이라면 스토리의 무게감을 실감할 터다.
대한항공 배구단 역사에서 가장 아팠던 순간인 2016~2017시즌 챔피언결정전 5차전. 곽승석은 리베로로 나왔다. V리그를 대표하는 레프트임에도 팀의 간절한 1승을 위해 리베로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패배로 대한항공의 첫 우승 꿈은 날아갔고, 곽승석의 헌신도 잊혀졌다.
프리에이전트(FA) 때, 예상을 깨고 대한항공 잔류를 선택했던 곽승석이었다. 웜업존에 머물렀던 시간, 리베로로 뛰었던 시련을 건너 곽승석은 다시 핵심전력으로 돌아왔다. 곽승석이 버티지 않았다면 대한항공의 드라마도 없었다. 곽승석의 17득점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