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선 블랙야크 회장
창립 45주년을 맞은 블랙야크의 강태선 회장은 2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블랙야크를 한번 사 입고 싶은 옷을 만드는 회사로 더욱 발전시키겠다”며 호랑이처럼 예리한 시각을 유지한 채 소처럼 끈기 있게 간다는 뜻의 고사성어 ‘호시우행(虎視牛行)’을 강조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기자와 인사를 나눈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69)이 인터뷰 사진을 찍기 직전 이렇게 말한 뒤 양복을 벗고 빨간 아웃도어 점퍼를 입었다. 가슴팍에는 강 회장이 직접 디자인한 야크의 뿔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아무리 험준한 산도 거침없이 오르는 야크의 기운을 담자는 게 이 디자인의 정신입니다.”
○ 종로 쪽방에서 시작한 사업
강 회장의 고향은 제주도다. 섬 자체가 거대한 산인 제주 출신이어서인지 어려서부터 산이 좋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년 정도 일을 하다가 서울에 올라온 것도 ‘서울의 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처음 서울에 와서는 남대문시장에서 옷장사를 하던 이모를 도왔다. 강 회장은 일하는 틈틈이 남대문시장을 돌며 등산 장비를 유심히 봤다. 당시 등산용품은 죄다 미군 물품을 개조해 만든 열악한 것들이었다. 배낭은 한국인 체형에 맞지 않아 잠시만 메도 등이 아팠다.
그는 군 장비 배낭을 뜯어 본을 뜬 후 직접 수선해 메고 다녔다. 그 배낭을 본 주변 사람들이 ‘그 배낭 예쁘다. 나도 사 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두 번 배낭을 만들어 판 것이 사업가로서의 첫걸음이 됐다.
○ 벼랑 끝에서 만난 ‘블랙야크’
벼랑 끝에 몰리자 강 회장은 히말라야를 찾기로 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모임을 꾸렸고 산악인 엄홍길 대장도 등반에 동참했다. 당시 티베트에는 히말라야 등반인들의 짐을 운반해주는 포터가 없었다. 그 대신 새까만 털에 이마에 하얀 점이 있는 야크가 짐을 지고 산을 올랐다.
강 회장은 “자갈로 덮인 비탈길을 거침없이 오르는 야크를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당시 대자연의 품에서 등산용품만 아니라 의류까지 취급하는 폭 넓은 브랜드로 새출발을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지금의 ‘블랙야크’는 그렇게 탄생했다.
한국의 아웃도어 업체들은 최근 수입 브랜드와 경쟁이 심해지면서 성장률이 정체된 데 따른 고민이 심하다. 하지만 강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사는 것 자체가 위기다. 기업은 365일 매일이 위기다. 그래서 지금이 과거보다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기를 극복하는 건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준비다. 우리는 에베레스트 같은 곳에 직접 가서 목숨을 걸고 제품을 테스트한다. 이 때문에 품질은 자신 있고, 이런 점을 소비자도 알아주리라 생각한다.”
○ 2020년 글로벌 넘버원 브랜드로
강 회장은 사회 공헌에도 힘쓰고 있다.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아내와 함께 가입했다. 사회복지 법인인 강태선나눔재단을 통해 국내외 소외계층 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마음의 고향’ 히말라야에도 학교를 지어 네팔 지진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돕고 있다.
강 회장은 최근 블랙야크 창립 45주년을 맞아 ‘2020년 글로벌 톱 브랜드’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창립 40주년이던 2013년에는 2020년까지 국내 2조 원, 해외 2조 원, 총 4조 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청사진을 내놓기도 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블랙야크의 신제품을 입고 틈날 때마다 산을 오른다는 강 회장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블랙야크라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 제1의 목표”라고 답했다. 강 회장의 사무실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고사성어인 ‘호시우행(虎視牛行)’이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 그는 “호랑이처럼 예리한 시각을 유지한 채 소처럼 끈기 있게 간다는 뜻”이라며 “블랙야크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되는 날까지 우직하게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손가인 gain@donga.com·박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