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올해는 개혁개방 40주년입니다. … 시진핑 국가주석은 일대일로를 주창해 주변 국가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 국유기업 재산 유실을 막기 위해 어떤 감독 메커니즘을 내놓을 것인지 소개해주세요.”
평범한 질문이 다소 장황했다. 자신을 미국 방송국 기자라고 밝혀 놓고 “우리나라(중국)가 해외 개방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여기자 바로 옆에 서 있던 파란색 정장의 중국 여기자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급기야 빨간색 옷 여기자에게 눈을 흘기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파란 옷 기자가 흰자위를 번득이는 장면이 캡처돼 이모티콘으로 만들어져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급속도로 확산됐다. “부탁할게, 입 좀 닫아줄래?” 등의 풍자적 글도 붙었다.
중국 누리꾼들은 파란색 옷 여기자가 상하이의 경제신문 소속인 량(梁)모 기자라는 걸 밝혀내고는 “평소 우리의 내심을 눈흘김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응원했다. 두 여기자와 똑같은 색 옷을 입고 상황을 흉내 내는 동영상들까지 올라왔다. 전미방송국 기자에게는 가짜 외신 기자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양회 직전 중국의 외신 기자들은 중국 당국에 “실제로는 중국 매체인 (가짜) 외신 매체 기자를 등장시키지 말라”는 문제 제기를 한 터였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자매지 환추시보 후시진 편집장도 이 소동에 가세했다. 이날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격)에 글을 올려 “쓸데없이 장황하게 질문한 여기자에게 눈을 흘긴 기자가 화제가 됐다. 이 가십이 삭제되지 않고 인터넷에 남아 있기를 바란다. 당원 간부는 언제나 정치를 얘기하지만 일반 국민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관련 뉴스와 동영상 검열에 나섰고 후 편집장의 글도 삭제됐다. 후 편집장은 삭제 사실을 알리며 “하나의 화제가 또 죽었다. 단지 눈을 흘겼을 뿐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지금 중국은 시 주석에게 권력이 집중될수록 사회 통제와 검열도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고 있다. 잠시나마 눈 흘긴 여기자 사건으로 ‘양회를 즐겼던’ 중국 누리꾼들의 유희는 경직된 통제에서 숨 돌릴 틈을 달라는 중국 인민들의 외침이었을지 모른다.
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