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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라이프] ‘도시농부’ 5년차…“텃밭 가꾸니 삶에 활력”

입력 | 2018-03-21 18:55:00


5년째 서울시로부터 분양받은 6.6㎡ 텃밭을 가꾸는 문대상 씨가 지난해 수확한 고구마를 한 움큼 들어 보이며 웃고 있다. 김단비기자 kubee08@donga.com

16일 서울 강서구 ‘실버농장’에서 5년차 ‘도시농부’ 문대상 씨(73)는 텃밭을 살폈다. 지난달 서울시에서 분양받은 6.6㎡짜리 밭. 모종을 심기 좋게 트랙터로 간 흙을 만져 보더니 “석회와 밑거름이 골고루 잘 섞였다”며 흐뭇해했다. 텃밭을 가꾼 지 5년째. 말과 행동에서 농사꾼 태가 났다.

“사람이 날씨에 민감하듯 작물도 날씨 영향을 많이 받아요. 모종을 심기에 아직은 춥지요. 지금은 산성화된 밭에 석회와 밑거름을 잘 섞어줘야 해요.”

문 씨는 다음 달 중순 상추와 열무 모종을 심고, 일조량이 많은 5월에는 토마토와 고추를 심을 계획이다. 사이사이에 허브도 심는다.

서울시는 2008년부터 매년 65세 이상이 텃밭을 가꾸며 삶의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6.6㎡짜리 텃밭을 분양하고 있다. 매년 2월 시나 서울시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에서 분양 신청을 받는다. 한 명당 한 구획(6.6㎡)만 신청할 수 있다. 도시농부가 되려는 사람은 의외로 많아 지난해 강서 서초 송파구 텃밭 929곳 분양에 2000명 가까이 몰려 추첨을 해야 했다. 텃밭 사용료는 1만 원. 서울시농업기술센터에서 각종 모종과 호미 곡괭이 같은 농기구를 지원한다. 작물 종류별 재배법도 알려주고 트랙터로 밭도 갈아준다. 농사를 지어본 적 없어도 상관없다.

올해 텃밭 신청자 3분의 1은 두 번 이상 가꿔 본 이들이다. 이들은 텃밭으로 주말 가족 나들이를 다니며 “가족관계가 개선됐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은 모종을 심기 좋도록 밭을 깊게 갈아주는 작업이 한창이다. 김단비기자 kubee08@donga.com

문 씨도 마찬가지다. 아내와 둘 뿐인 집에 아들 내외가 오면 반갑다가도, “재미없다”며 자신을 잘 따르지 않는 초등학교 4학년 손자에게 서운하기도 했다. 텃밭은 이 둘 사이를 좁혀 놨다. 문 씨는 “텃밭에 한 번 데려간 뒤로 ‘또 언제 가냐’며 조른다. 우르르 딸려 나오는 손맛이 좋은지 감자 캘 때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다. 손자 덕분에 병충해 방제법도 고안했다. 손자 소변으로 천연퇴비를 만들어 뿌리자 그 해 병충해가 줄었던 것.

문 씨는 서울시 등에서 30년간 공직에 있다 2008년 퇴임했다. 이후 여행하며 서너 해를 보냈지만 집에 돌아오면 헛헛했다. 우연히 나간 모임에서 “텃밭을 가꾸는 일이 생기니 사는 것 같다”며 환히 웃는 지인이 그를 바꿔놨다.

밭일은 생각보다 고되지 않았다. 사흘에 한 번 김을 매고 병든 잎을 뜯어주면 그걸로 됐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줬고, 호미로 땅거죽을 슬슬 긁어만 줘도 토마토와 가지가 쑥쑥 자랐다.

병충해 없이 잘 키워 수확량이 많으면 주위에 나눠줬다. 문 씨는 “수확한 감자, 호박 등을 경로당이나 복지시설에 가져다주고 있다. 많진 않지만 사람들과 함께 먹을 수 있어 기쁨이 두 배다. 내겐 이게 봉사다”라고 말했다.

이달 서울시농업기술센터에서는 4차례 텃밭교육이 열리고 있다. 서울시 도시농업과 전종문 주무관은 “빠짐없이 참석하는 60, 70대분들은 ‘4월만 기다린다’는 말을 자주 하신다”고 말했다.

텃밭은 학생들에게는 자연학습장이 돼 준다. 현재 초중학교 41곳이 자유학기제나 동아리 수업 때 상자텃밭을 가꾼다. 시나 해당 자치구에 신청하면 상자에 퇴비와 모종 등이 든 상자텃밭 세트를 제공한다. 상신중 김혜영 교사는 “지각이 잦던 학생도 새벽같이 등교해 작물을 키우며 책임감과 인내심을 배운다”고 말했다.

김단비 기자 kub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