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커피’의 아인슈페너. 홍지윤 씨 제공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chiffonade) 운영자
시부야 중심가를 살짝 벗어난 골목길 후미진 곳에 자리 잡은 다방은 대낮인데도 손님들로 가득했다. 테이블에는 알록달록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을 사이에 두고 차를 마시며 케이크를 나눠 먹는 커플들, 카운터석은 홀로 신문이나 책을 읽으며 드립 커피를 즐기는 손님으로 가득했다. 커다란 괘종시계와 작은 액자들이 벽면을 채우고, 마이센 웨지우드 노리다케 등 찻잔들이 나열된 오래된 장식장은 반들반들했다.
커피와 차의 향이 뒤섞인 채 반쯤 가라앉은 듯 무거운 공기를 타고 올드 뮤직이 흐르는 분위기는 30년 전 쯤에 시간이 멈춘 듯 클래식했다. 손 글씨로 쓴 메뉴판을 보니 숯불배전커피라는 타이틀 아래 오리지널 블렌드 커피, 드립커피, 카페오레, 카푸치노, 그리고 홍차의 이름들이 빼곡하다. 하지만 나는 비엔나커피를 주문했다. 숯불의 향이 은은하게 밴 구수한 블랙커피에 둥실 떠오른 구름처럼 풍부한 크림을 한 입에 머금은 순간 그 선택이 옳았음에 뿌듯해졌다.
알려진 대로 오스트리아 빈에는 비엔나커피가 없다. 한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뜻하는 아인슈페너(Einspanner)가 원래 명칭이다. 빈의 마부들이 추운 날씨를 이기고자 뜨거운 커피에 크림을 얹어 마시기 시작하며 알려졌다. 아인슈페너냐 비엔나냐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단 마실 때 크림을 커피와 섞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먼저 입술에 닿는 달콤한 크림을 한 입 머금고 그 뒤에 따라오는 씁쓸한 커피를 삼키며 크림의 맛, 크림이 녹아 든 커피의 맛 그리고 남은 블랙커피의 ‘3단 콤보’를 단계별로 느끼는 것이 좋다.
이제 곧 봄과 함께 찾아올 춘곤증을 날려 보내고 싶을 때, 피로에 지쳐 카페인과 당분이 동시에 필요할 때, 자신의 시름보다 더 깊은 친구의 시련을 들어줘야 할 때 비엔나커피를 권하고 싶다. 봄이 가고 곧 더위가 찾아오면 그땐 아이스비엔나가 우리를 식혀 주리라.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chiffonade) 운영자 chiffonade@naver.com
○ 밀로커피 로스터스 서울 마포구 양화로18안길 36, 02-554-3916, 몽블랑(비엔나커피) 6500원, 아이스몽블랑 7000원
○ 커피가게 동경 서울 마포구 망원로6길 21, 070-4845-0619, 아인슈페너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