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선에서 압도적인 득표율(76%)로 당선된 블라디미르 푸틴(66)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18일 러시아 대선이 끝난 후부터 지금까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각종 불법 투표 사례가 제보가 잇따르고 있다.
로이터 홈페이지 캡처
22일 로이터 통신은 대선 당일 러시아 남부 우스트-제구타 지역에서 중복 투표한 것으로 보이는 여러 명의 사진을 공개했다. 통신은 똑 같은 인물들이 215번 투표소에서 투표를 한 후 약 20분 후 몇 백 미터 떨어진 216번 투표소에 다시 등장하는 모습을 관찰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투표소에 무리를 지어 나타나거나 정부 기관 명칭이 부착된 미니버스를 타고 왔다. 로이터 기자가 확인한 결과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공무원이었으며,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거절하거나 “내가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곳의 선거관리위원은 “그들이 동일인인 것을 어떻게 아냐”, “똑같이 보일 수 도 있다”, “쌍둥이일 수도 있다”고 둘러댔다.
한 명이 투표용지 여러 장을 반복해서 넣는 모습도 포착됐다. 러시아의 또 다른 매체가 공개한 투표소 영상에서 중년의 남자는 선거관리위원이 한눈 파는 틈을 타 각기 다른 주머니에 투표용지를 두 번 꺼내 집어 넣었다. 더 놀라운 것은 선거관리위원이 일부러 한눈 파는 듯한 모습이다. 남자가 투표 후 자리를 뜨지 않고 투표함 앞에서 서성거리는데도 관리위원은 지켜보지 않고 슬쩍 다른 곳으로 몸을 돌렸다. 그사이 남자는 얼른 두 번째 투표 용지를 넣고 나갔다. 다른 여자는 투표를 마치고 나갔다가 얼마 후 다시 들어와 아예 여러 장을 한꺼번에 집어넣고 갔다.
이들이 이렇게 대범하게 불법 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이유는 처벌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법 상 중복 투표는 벌금형에 그치는 경범죄라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러시아 대통령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실인 크렘린 궁 대변인은 “만약 로이터의 보도가 각 투표소 내 감시원들이 사법기관에 보고한 내용과 일치한다면 우려할 일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혀 우려할 일이 아니다”라고 반응했다.
러시아 선거 감시 비정부기구 골로스에 보고된 부정선거 사례는 2400여 건에 이른다. 이번 선거에서 11.8%를 득표해 2위를 차지한 공산당 후보 파벨 그루디닌은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 가장 지저분한 선거”라고 개탄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