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기행/심경호 지음/768쪽·2만5000원·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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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영국 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와 ‘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의 묘비에는 이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두 서양 작가의 묘비명은 20세기에 쓰였지만 동양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묘비명을 스스로 짓는 전통이 있었다.
“태어나 크게 어리석었고 자라서는 병치레가 많았다. 배움은 추구할수록 아득해지고 벼슬은 사양할수록 얽어 들었다.”
퇴계가 죽기 며칠 전 쓴 자명(自銘)이란 글의 일부다. ‘조선의 지성’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룬 그였지만 객관적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엄정한 선비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너는 말하지, 나는 아노라 사서와 육경을. 하지만 행한 바를 살펴보면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에서 삶의 반성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오랜 유배 기간 등 주변의 조건을 원망하는 대신 내면의 성찰을 강조한 대학자의 깨달음을 느낄 수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