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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서도 타오른 촛불… 시위대 “아베 퇴진”, 시민들은 “스고이”

입력 | 2018-03-26 03:00:00

1만명 23일 총리관저 앞 집회
‘사학스캔들’ 아베정권 압박




23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관저 앞에서는 최근 학원 스캔들과 관련해 아베 신조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열렸다. 시위 참석자들이 집회 도중 촛불을 들어 올려 항의의 뜻을 전하고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23일 오후 8시,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총리관저 앞.

“이제 시간이 됐습니다. 다들 플래카드를 내리고, 촛불을 들어주세요.”

수천 명의 인파가 주최 측의 요청에 따라 일제히 발광다이오드(LED) 촛불과 플래시를 켠 휴대전화 등을 들어 올렸다. 비가 조금씩 왔지만 시민들은 촛불을 흔들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물러나라”, “거짓말을 멈춰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주최 측은 “역사적인 광경이 될지 모른다. 꼭 사진을 찍어 달라”고 당부했고 기자들은 촛불 바다를 향해 연이어 셔터를 눌렀다. 여기저기서 “정말 멋지네요”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모리토모(森友)학원 스캔들을 둘러싸고 아베 정권이 코너에 몰린 가운데 총리직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대가 이날부터 촛불시위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정권을 바꾼 촛불이 일본에 상륙한 것이다.

○ “촛불로 아베 총리 몰아낼 것”

주최 측이 23일 촛불집회를 위해 제작해 인터넷으로 배포한 포스터.

이날 시위는 2015년 안보법제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의 리더 격이었던 오쿠다 아키(奧田愛基·26) 씨 등이 기획했다. 오쿠다 씨는 지난주 트위터를 통해 “촛불 3000개를 준비했다”는 글을 올리며 참여를 촉구했다. 또 포스터를 배포하며 ‘캔들스 라이트업 데모크러시’ 캠페인을 벌였다. 다만 안전상의 이유로 실제 초 대신 LED 촛불, 야광봉 등을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인터넷에는 ‘촛불을 들고만 있으면 되니 부담 없이 시위에 갈 수 있겠다’, ‘시위라면 왠지 무섭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촛불이라면 안심이다’, ‘한국을 본받아 일본도 힘을 내자’는 등의 호응이 잇따랐다.

자발적으로 촛불을 준비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이날 현장에서 ‘캔들 스태프’라는 완장을 차고 ‘LED 촛불’을 나눠 주던 쓰노이 덴코(角井典子) 씨는 “지인들과 2000개의 촛불을 준비해 왔다. 한국에서는 촛불이 정권을 바꿨다. 촛불은 부드럽고, 예쁘고, 비폭력적이다”라고 말했다.

복지 관련 일을 한다는 노나카 도시히로(野中俊宏·52) 씨는 “한국처럼 촛불이 힘을 내면 좋겠다. 아베 총리가 물러날 때까지 계속 시위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거리가 촛불로 가득 찬 모습을 보면서 “스고이(멋지다)”, “기레이(예쁘다)” 등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날 경찰은 시위대가 도로의 절반만 사용할 수 있게 했으며 사람이 몰린 곳에는 인간 띠를 만들어 지정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지정 구역이 아닌 곳에서는 서 있기만 해도 확성기로 “통행에 방해가 되니 이동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일부 시민은 촛불을 든 채 거리를 이곳저곳 오가며 시위를 했다.

이날 시위에는 촛불을 들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해 1만 명가량이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최 측은 앞으로 매주 금요일 촛불시위를 열어 아베 정권을 압박할 계획이다. 이날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운영하는 식당엔 협박편지가 배달되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6시 반 외부 행사 참석차 관저를 떠나 촛불을 눈앞에서 맞닥뜨리는 사태를 피했다.

○ 우익 “반(反)일본적 한국 따라 하기다”

인터넷에는 사정상 시위에 나오지 못했거나 해외에 거주하는 이들이 집에서 촛불을 켠 사진과 함께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등 촛불시위는 온·오프라인에서 확산되는 모습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한국인들의 응원도 쏟아지고 있다.

반면 우익 진영에선 한국의 시위 방식을 따라 한 것에 노골적인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날 촛불시위 직전 관저 앞에서는 ‘아베 총리를 지키자’는 우익단체 집회가 열렸다. 인터넷에는 ‘한국식의 촛불시위는 일본을 흔드는 행동’, ‘데모를 하는 이들은 모두 재일동포나 한국인’ 등의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여당인 자민당 내부에서도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25일 당 대회에서 “행정의 수장으로 책임을 통감한다.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전날(24일) 전국 간사장 회의에 이어 이틀 연속 사과한 것이다.

27일에는 모리토모학원에 국유지를 헐값 매각하고 관련 문서를 조작할 당시 이재국장이자 사건의 핵심 인물인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전 국세청 장관이 국회에 출석한다. 그의 답변에 따라 정국이 더 크게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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