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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서영아]잘나갈 때 삼가라

입력 | 2018-03-26 03:00:00

아베 독주 人治의 폐해…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아




서영아 도쿄 특파원

“나나 내 처가 관여했다면 총리는 물론이고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

지난해 2월 17일, 사학재단 모리토모(森友)학원에 대한 국유지 헐값 불하 문제로 국회에서 추궁당하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자신 있게 답했다. 이 ‘경솔한’ 발언은 지금 부메랑이 돼 그를 괴롭히고 있다. 올해 재점화된 모리토모 2차 파동(공문서 조작 문제)에서도 총리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에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야당은 아키에 여사를 국회에 불러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여당은 일단 “문서 조작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고 버티고 있다.

막후에서는 실제 아키에 여사가 무엇을 했는지 아베 총리도 모를 거라는 귓속말이 들린다. 주간지들은 요즘 아베 총리의 속내를 “무서워서 아키에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는 조롱 섞인 제목을 달아 내보내고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베 정권의 향방을 물어온다. 예단하긴 어렵다. 다만 참고로 며칠 전 일본 언론사 기자들과 나눈 관련 대화를 정리하면 이렇다.

우선 아베 총리 스스로 그만두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적절한 시기에 옷을 벗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꼼수’의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가 재무상에서는 물러나되, 부총리 자리는 유지할지 모른다는 것.

아베 총리의 운명은 9월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 선거가 갈림길이 될 것이다. 6월 20일경 정기국회가 끝나면 한시름 돌린 아베는 개각을 단행하는 등 연명책을 찾을 것이다. 다만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 아키에 여사를 둘러싼 추가 스캔들 대두 등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그가 총재 선거를 앞두고 적절한 시기에 불출마 선언을 할 수 있다는 데 의견들이 모아졌다.

그가 “국민의 신임을 묻겠다”며 중의원 해산 카드를 빼들지 모른다는 극단론도 나왔지만 비현실적이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지난해 10월 총선거를 실시한 지 1년도 안 됐다. 아무리 아베라도 오로지 자신을 위해 수천억 원의 비용과 국가적 에너지가 소요되는 총선거를 실시한다면 그 자체로 역풍을 맞을 소지가 크다.

아베 총리가 모든 역경을 딛고 소생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총리 그만두겠다”는 호언장담이 만든 족쇄는 지속적으로 그를 옥죌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여름, 아베 독주 체제의 국회에서 절대 다수파 집권여당이 공모죄법(테러대책법) 등을 강행 처리했을 때, 사석에서 만난 일본의 원로 정치부 기자는 “너무 법치에 철저해도 인치(人治)가 돼버린다”며 혀를 찼다. 다수파의 다수결 실력 행사는 외견상 법치로 보이지만 내용 면에서는 독선적 인치의 폐해로 귀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14년 내각인사국을 신설해 관료들의 인사권을 총리관저가 장악한 것도 ‘합법’이었지만 그 결과는 이번 공문서 조작 사태의 직접 원인이 됐다. 일본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관료사회가 ‘출세’라는 당근 앞에서 ‘알아서 기는’ 조직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 소식이 크게 다뤄졌다. 그러고 보면 두 사례는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하나의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 것 아닌가, 국민을 속일 수 있다고 여기고 자만했던 것 아닌가 싶다. 권력은 잘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이 전 대통령 구속에 대해 청와대가 내놓은 논평은 새삼 신선하게 들린다. “스스로 가을서리처럼 삼가고 또 삼가겠다.” 아울러 지금 잘나가는 분들도 한 번쯤 스스로 경계해보는 게 어떨까.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