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전 세계 장애인의 축제였던 평창 패럴림픽이 절정으로 치닫던 14일.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별이 돼 저 넓은 우주로 떠났다. 그는 갈릴레이가 세상을 떠난 날 태어났고, 아인슈타인이 태어난 날 별세했다고 한다. 세기의 천재는 이런 식으로 묘사됐다.
호킹 박사는 인간 승리의 표상이었다. 근육이 위축되는 루게릭병을 안고 50여 년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우주론과 양자 중력 연구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뉴턴, 아인슈타인과 함께 물리학의 3대 거장으로 평가된 특별한 장애인이었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급이 달랐다.
6년 전 런던 여름패럴림픽 개회식 무대. 커다란 달 조형물 아래 호킹 박사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목소리를 잃은 그를 대신해 기계음이 행사장에 울려 퍼졌다. 패럴림픽 축사였다. 8만 관중은 숨을 죽였다.
“우리는 모두 다릅니다. ‘표준적인 인간’이나 ‘평범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공통적으로 창의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모든 사람에겐 특별한 성취를 이뤄낼 힘이 있습니다.”
그는 장애를 강조하지 않았다. 다만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인간을 정의하는 데 있어 표준과 평범이라는 낡은 틀을 버리고 거기에 다양성을 채용했다. 그리고 그 다양성을 ‘우리’라는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어휘로 수렴했다. 장애든, 비장애든, 그 어떤 형식이든. 모든 우리는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대단한 존재였다.
그래서 이번 평창 패럴림픽에서 우리나라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딴 신의현의 말을 곱씹게 됐다. “저도 이렇게 될지 몰랐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의현도 사람을 얘기했지, 장애를 얘기하지 않았다.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사람에겐 특별한 성취를 이뤄낼 힘이 있다’는 호킹의 말을 닮았다.
그런데 우리도 그랬고, 다른 언론도 그랬다. 패럴림픽 기사에는 ‘장애를 극복하고’라는 말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다. ‘장애를 극복하고’ 나면 무엇이 될까. 비장애가 될까. 장애는 비장애의 열등 개념인 것인가. 이렇게 신의현과 아이스하키팀이 쏟은 땀의 의미를 축소해 버린 게 아닐까 싶다. 비장애의 관점에서, 패럴림픽을 관찰했던 것이다. 크게 반성한다.
패럴림픽은 장애인의 축제가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축제다. 그걸 깨닫는 데 참 오래 걸렸다. 호킹 박사는 말했다. “패럴림픽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라고.
패럴림픽이 끝난 뒤 느꼈다. 출근길 광화문역. 목발을 짚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자연스럽다는 걸. 장애와 비장애를 애써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걸. 일단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고개 들어 별을 보라.” 이번 패럴림픽, 참 행복했다. 정말 고맙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