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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 부부는 원경왕후의 시녀인 김씨가 이방원의 아이를 몰래 임신하면서부터 원수 사이가 됐다. 시녀의 임신에 분노한 원경왕후는 김씨와 아이를 엄동설한에 집 앞 다듬이 돌 옆에 버리게 했다가 태종의 엄청난 노여움을 사게 된다. 태종 15년 12월 15일의 조선왕조실록 기록이다.
“원경왕후는 자신의 노비로 궁에 들어온 자가 (태종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고 죽이려 마음먹었다. (중략) 민씨 일가가 음참하고 교활해 여러 방법으로 (아이를 죽일) 꾀를 내었는데, 반드시 사지(死地)에 두고자 하였으니 그 핏덩어리에게 하는 짓이 극악하였다.”
“대비와 주상의 간 곳을 몰랐는데, 오늘에야 알고 보니 대비의 학질을 근심한 주상이 마치 필부(匹夫)처럼 대비를 모시고 혼자 말을 타고 나가 병이 낫기를 도모한 것이었다. 심히 그 효성이 아름답다.”
세종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궁궐을 비우고 국정을 내팽겨 둔 채 간호에만 집중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실록은 세종이 원경왕후의 학질을 떼기 위해 머문 곳을 언급했는데, 개경사라는 절, 오부·최전의 집, 이궁(離宮) 남쪽 교외의 풀밭, 갈마골 박고의 집, 송계원 냇가, 선암 동소문, 곽승우, 이맹유의 집 등 어지러울 정도로 많았다. 이는 학질을 고치기 위해선 한 곳에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무속신앙에서 비롯된 치유 행위로, ‘학(학)을 뗀다’는 말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이외에도 어머니의 학질 치료를 위한 세종의 기이한 행동은 계속된다. 유학의 나라 조선의 왕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대비를 모시고 개경사에서 피병할 때 술사둔갑법(術士遁甲法)을 쓰다.” “도류승(道流僧) 14인을 모아 도지정근(桃枝精勤·복숭아 가지를 잡고 기도하는 도교의식) 의식을 베풀었다.” “무당을 시켜 성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학질이 낫기를 기원했다.”
조선의 의료체계는 유학을 근본정신으로 삼고, 의약(醫藥)을 중심으로 운영됐다. 병은 인간의 기질과 욕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먼저 마음을 수양하는 양심(養心)이 치료의 시작이 됐다. 하지만 무속은 질병을 피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보고 마음을 달래는 안심(安心) 행위로 치유를 시도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