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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권의 나무 인문학]꽃의 우두머리

입력 | 2018-03-27 03:00:00

<39> 매실나무




추위에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

장미과의 갈잎중간키나무 매실나무는 신맛의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다. 꽃은 매화라 부른다. 매실나무는 꽃이 일찍 피어서 ‘조매(早梅)’, 추운 날씨에 피어서 ‘동매(冬梅)’, 눈 속에 피어서 설중매(雪中梅)라고 부른다. 매실나무는 꽃 색에 따라 백매(白梅), 홍매(紅梅), 청매(靑梅)로 나뉜다. 우리나라 화가들은 18세기까지 주로 백매를 선호했으나 19세기부터 홍매도 좋아했다. 매화는 ‘꽃의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화괴(花魁)’라 불릴 만큼 아름답다. 꽃잎과 꽃받침이 각각 다섯 장이다. 매실이 익을 즈음 장마가 시작된다. 그래서 장마를 ‘매우(梅雨)’ 혹은 ‘매림(梅霖)’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매실나무는 경남 산청군의 ‘정당매(政堂梅)’다. 정당매는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의 편찬자인 강희안(姜希顔)의 조부인 강회백(姜淮伯)이 심은 나무다. 산청의 정당매를 비롯해 원정공 하즙이 심은 원정매, 남명 조식이 심은 남명매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매실나무다. 이처럼 우리나라 전역에는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심은 매실나무가 적잖이 남아 있다. 퇴계 이황은 ‘매화시첩’에서 보듯이 조선시대 지식인 중에서도 매화 시를 가장 많이 남겼다. 단원 김홍도는 3000냥의 그림 값 중 2000냥으로 매실나무를 사고 800냥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과 함께 마셨다. 일본도 에도시대 오카타 고린(尾形光琳)의 ‘홍백매도병풍(紅白梅圖屛風)’에서 보듯이 매실나무를 사랑한 사람이 아주 많았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매실나무 그림은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梅妻鶴子)으로’ 삼았던 중국 송나라 임포의 영향이 컸다.

매실나무를 찾아가서 만나는 것을 탐매(探梅) 혹은 심매(尋梅)라고 부른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탐매를 즐긴 것은 사군자(四君子·梅蘭菊竹)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매실나무의 인격화는 추운 날씨에도 본성을 잃지 않고 평생을 살아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상촌 신흠이 남긴 ‘매화는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不賣香)’는 구절은 우리나라 전통시대 지식인들이 매실나무를 좋아한 이유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다. 전통시대든 지금이든 배운 것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일삼는 지식인이 아주 많다. 매실나무의 삶은 곡학아세를 경계해야 하는 지식인들의 표상이다.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