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몰 4층 놀이시설서 시작… 라이터 든 아동의 불장난 추정 영화관 2곳 아래층으로 내려앉아… 경보기 불통-유독가스에 피해 커
25일 오후 러시아 시베리아 도시 케메로보의 ‘겨울 체리’ 쇼핑몰. 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같은 반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왔던 빅토리야 비카 포찬키나 양(12)이 이모 예브게니야 씨에게 전화로 울부짖었다. 이모는 “옷을 벗어서 코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소녀는 힘없이 “이모, 가족들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줘. 엄마한테 내가 사랑한다고 전해줘”라고 대답했다. 그 직후 전화는 끊겼다. 예브게니야 씨는 러시아 영자지 시베리안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방학을 맞아 같은 반 친구들 거의 모두가 영화관에 있었다. 애들과 동행한 학부모 두세 명과 교사가 있었지만 애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쇼핑을 하러 간 참이었다. 어른들은 모두 목숨을 건졌지만 아이들은…”이라고 말했다.
불은 쇼핑몰 4층에 있는 어린이 놀이시설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케메로보주의 블라디미르 체르노프 부지사는 “트램펄린이 있는 어린이 놀이시설에서 불이 시작됐다”며 “초동 수사에 따르면 휴대용 라이터를 가진 한 어린이가 스펀지 재질의 물체에 (장난 삼아) 불을 붙였는데 갑자기 불길이 번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린이 놀이시설 내부 전깃줄에서 화재가 시작됐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불길이 순식간에 번지면서 건물 내부는 새카만 연기에 휩싸였다. 다수의 사망자가 쇼핑몰 4층의 어린이 놀이시설과 영화관 등에서 나왔는데, 대부분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파악됐다. 목격자가 찍은 영상에는 한 젊은이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3층 창문 아래로 몸을 던지는 장면도 나온다. 화재 초기 100여 명이 긴급 대피했고, 소방 당국의 진화 과정에서 20명을 구조했으나 대형 참사를 막진 못했다.
화재경보기도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화재 당시 가족과 함께 쇼핑몰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던 안나 자레치네바 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았다. 영화관 내부에 불이 켜지지 않았고, 영화가 계속 재생됐다”고 전했다. 자레치네바 씨 가족은 주변 사람들이 화재 사실을 알려줘 간신히 쇼핑몰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화재가 난 쇼핑몰은 2013년 문을 연 2만3000m² 규모의 현대식 상가로 내부에 어린이 놀이시설과 영화관, 볼링장, 동물원, 푸드코트 등이 있다. 비상사태부로부터 쇼핑몰 화재에 대해 보고받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화재를 진압하고 피해자들에게 최대한의 지원을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아만 툴레예프 케메로보 주지사는 “희생자 1인당 100만 루블(약 1894만 원)을 유가족에게 지급하고 심리학자와 전문 의료진의 치료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