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l 오디컴퍼니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 지났지만 자신이 가진 목소리 하나로 공연장을 지독히 추운 겨울날의 러시아로 바꿔버린 이가 있다. 뮤지컬 ‘닥터 지바고’에서 유리 지바고 역을 맡은 배우 박은태다.
500페이지가 넘는 원작 소설과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개봉(1978)돼 세 번이나 재개봉될 정도로 유명한 명작 ‘닥터 지바고’가 뮤지컬로 2012년 초연 이후 6년 만에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초연 당시 닥터 지바고 역에 조승우, 홍광호의 캐스팅에도 흥행면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연을 결심하게 된 ‘닥터 지바고’ 팀에게 고맙다고 말하듯 커튼콜 내내 관객들의 전석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사진제공 l 오디컴퍼니
폭발적인 성량과 미성을 두루 갖춘 박은태가 보여준 유리 지바고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다른 남자에게 총구를 겨눈 라라를 보고 난 후의 넘버 ‘그녀는 누굴까’는 당시 시대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끓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숨겨 부르는 모습에는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아버렸다.
유리와 라라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군의관과 종군간호사로 재회를 하게 된다. 자신들이 치료해준 어린 군인 얀코가 연인에게 전해주려던 편지를 지닌 채 삶을 등져버리고, 그 편지를 라라와 함께 읽으며 시작되는 듀오 넘버 ‘지금’에서부터 박은태의 미성이 빛을 발한다.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지만 유리는 가족이 있는 모스크바로, 라라는 자신의 고향인 유리아틴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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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역시 지바고지”라는 말을 하는 이들을 백번 이해할 수 있었던 넘버였다.
배우 박은태의 목소리는 단순한 목소리가 아닌 강력한 무기이자 공연장 안에서의 현재와 20세기의 러시아를 이어주는 매개체와도 같았다.
‘은바고’를 만났다면, 아마 당신은 겨울만 되면 “겨울엔 지바고”라 말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수진 기자 sujinl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