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봉태규는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리턴’을 통해 10년 공백을 무색하게 만드는 ‘인생연기’를 펼쳤다. 그는 “처음 맡는 악역이어서 처음에는 걱정이 컸지만 지금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사진제공|iMe KOREA
■ 드라마 ‘리턴’ 마친 봉태규
연기자인데 10년간 제대로 연기 못 해
남편이자 사위로서 마침내 용기 냈죠
처음엔 시청자들이 어색해할까 고민
마지막 촬영 마치고 혼자 울컥하기도
남편이자 사위로서 마침내 용기 냈죠
처음엔 시청자들이 어색해할까 고민
마지막 촬영 마치고 혼자 울컥하기도
연기자 봉태규(37)는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리턴’에 출연하지 않았다고 상상을 하니 “끔찍하다”고 했다. 2008년 MBC 드라마 ‘개인의 취향’ 이후 단막극은 참여했지만 미니시리즈는 10년 만이어서 ‘리턴’이 없었다면 그의 공백은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더욱이 ‘리턴’ 출연제안을 한 차례 고사했던지라, 어쩌면 없었을 ‘리턴’의 상과가 더없이 소중하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너무 오래 쉬어 갈증이 여전히 많다. 해소되기에는 멀었다”고 말했다.
봉태규는 ‘리턴’을 통해 ‘봉태규의 재발견’이라는 호평을 얻었지만, 아직도 헛헛하다. ‘리턴’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한 뒤 울컥해 혼자 울기도 했다. 작품을 끝내고 눈물을 흘리기는 2000년 영화 ‘눈물’로 데뷔하고 처음이다. 그만큼 그에게는 ‘리턴’과 보낸 3개월은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맡은 악역이어서 자신감도 없었고 촬영하면서도 고민이 컸다. 그동안 보여준 제 이미지와 달라 시청자가 어색해하지 않을까, 스스로 어울리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다. 지금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좋다. 저도 이런 캐릭터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것에 만족감이 크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행복한 순간이다. 봉태규는 “직업이 연기자인데 10년 동안 제대로 연기를 하지 못했다. 그렇게 막연하게 기다려왔다. 저의 대표작이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2005) 이후 13년 만에 바뀌었다”고 뿌듯해 했다.
SBS 드라마 ‘리턴’에서의 봉태규. 사진제공|스토리웍스
봉태규는 ‘리턴’에서 일상적으로 폭력을 일삼는 재벌 2세 김학범을 연기했다. 극중 모든 사람을 하대하는 폭력성은 그의 비열한 표정과 맛깔스러운 표현력으로 극대화되면서 캐릭터의 매력이 십분 발휘됐다. 실제 아내마저 자신의 역할을 두고 ‘쓰레기’라고 과격하게 반응할 정도로 봉태규는 ‘김학범’이란 개릭터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시청자도 그의 과감한 도전에 호평을 쏟아냈다.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리턴’을 만나기까지 10년간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공백기를 보내면서 연기할 기회가 급격히 줄었다. 2010년 아버지를 여의고는 심적으로 힘겨운 날들을 보냈다.
봉태규는 “제가 욕먹는 건 익숙하지만 가족에게까지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건 충격이었다”고 했다. 급기야 “사람들에게 잊혀져가는 걸 안도했다”고 돌이킬 정도로 대중의 싸늘한 시선을 버텨내는 것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연기를 하고 싶지만 무서워” 선뜻 나서지도 못했다.
“결혼 당시에는 제가 한창 활동할 때가 아니어서 생활비 고민과 가족을 책임지지 못할까봐 걱정했다. 아내도 일을 하지만 제가 해야 하는 몫이 있지 않나. 가족의 존재가 저를 움직일 수 있도록 힘을 만들어줬다.”
결혼 전에는 동료들이 봉태규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앞집에 살았던 타블로와 2년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그가 재기하는 모습을 보고 긍정적인 기운도 받았다. 이후 2년은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웃었”다.
봉태규는 “힘들 때 가만히 있으면 별별 좋지 않은 생각이 드는데, ‘무한도전’을 보고 있으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고 했다. 또 2년은 글을 쓰면서 보냈다. 잡지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했던 그는 “새로운 분야를 하니 시간이 빨리 가더라. 수신자에 ‘작가님’이라고 써있는 메일도 받고 재밌는 경험이었다”고 떠올렸다. 이후 결혼하기까지 2년은 각종 예능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자존감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연기자 봉태규. 사진제공|iMe KOREA
봉태규는 이제 걱정은 없다. 그의 곁에는 가족이 있다. 4월부터 아들과 함께 KBS 2TV 육아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다.
“아이는 빨리 커가며 변화하는데 최근 제가 못 알아듣는 말과 행동을 하더라. 드라마 촬영 때문에 같이 보낸 시간이 적은 탓도 있지만, 제가 아이를 잘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봉태규’의 역할도 충실히 하면서 아내에게는 “좋은 남편”이고 싶다. 그가 말한 좋은 남편의 모습 중 일부는 ‘연기자 봉태규’로 어깨를 펴는 것이다. 그는 “‘리턴’에 출연해 가장 기분 좋은 건 아내에게 칭찬받고 뽐낼 수 있어서”라고 했다.
“로맨틱코미디 장르에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다. 20대 때와는 다른 저의 표현방식으로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 감히 말씀드리면 정말 재밌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차기작에서 또 악역을 맡아도 부담은 없다. 멜로 장르에 대한 갈증도 있다. 하하!”
백솔미 기자 b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