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총리 선출 집착 벗어나 장관들과 4대 권력기관장 국회 임명동의 추구하면 제왕적 대통령 견제에 도움 여권이 꽃놀이패 쥔 개헌… 아쉬운 야권이 욕심 버리고 못 빠져나갈 大義 내세워 개헌 기회 오히려 활용해야
송평인 논설위원
대통령의 생각이란 것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개헌안 중 ‘국회 의석은 투표자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한다’는 조항은 사실상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이다. 대통령을 견제하려면 국회에 소선거구제에 바탕을 둔 거대 양당이 있어야 한다. 국회에 군소정당이 난립할 수 있는 선거제를 도입하자고 하면서 대통령제는 거의 현행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국회의 권력을 약화시켜 대통령의 권력을 상대적으로 강화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전제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두 제도의 상관관계에 대해 자신의 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의 개헌안은 의미가 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국회의 국무총리 선출권이나 추천권을 요구했으나 청와대는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 변형된 의원내각제”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거부든 수용이든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은 논의를 위한 진전이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누구 말대로 ‘20년 더 집권할’ 자신이 있어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키는 시늉만 하고 넘어가고, 한국당은 그렇지 못해 분권형 총리에 목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치 상황이란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다. 민주당이 참패해서 또 다른 정치보복의 쓴맛을 볼 날이 올 수도 있고, 한국당은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정치 불능 시스템에서 헤맬 수도 있다. 헌법은 승자가 돼도 패자가 돼도 당당히 뛰어놀 수 있는 중립적인 그라운드로 여겨야 한다.
여당은 대통령의 권한을 대통령 개헌안보다 더 내놓아야 하지만 야당도 총리 문제에서 반드시 승부를 보려 해서는 안 된다. 국회에 총리 선출권이나 추천권을 주지 않아도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할 다른 대안들이 없지 않다. 국회 인사청문 대상일 뿐인 장관들과 검찰총장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4대 권력기관장을 국회 임명동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도 그런 대안 중 하나다.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장관을 비롯해 중앙정보국(CIA) 국장, 연방수사국(FBI) 국장 등 고위 공직자를 모두 상원의 인준을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인준이 임명동의에 가까우냐, 인사청문에 가까우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의 정치문화의 차이를 고려할 때 임명동의는 한국식 인준제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총리를 제외하고는 장관 등 행정부 요직에 대한 의회의 통제가 부족했기에 결국 제왕적 대통령제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것이 개헌 요구에 이른 요체다.
이런 반박이 가능하다. 총리와 감사원장은 현재도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하지만 독립적인가. 임명은 국회 동의를 얻어 해도 해임은 대통령 맘대로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독립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문화는 더뎌도 발전하고 있어 당파성이 강한 인물이 총리나 감사원장이 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중남미 국가는 미국과 유사한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정치적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 제도만으로 되지 않는 정치문화적 요소가 있다. 정치문화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소용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