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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조수진]‘지체된 정의’

입력 | 2018-03-28 03:00:00


“정의가 이뤄졌다.” 26일(현지 시간) 미국 메이저리그의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네베스트 콜먼을 구장 관리인으로 다시 고용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렇게 밝혔다. 콜먼은 1994년 살던 건물 지하에서 20세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강간·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혔다가 진범이 잡혀 지난해 11월 풀려났다. 23년 만이었다. 석방 당시 “햄버거 먹는 것”과 “야구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소원이라던 그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루 뒤인 27일 우리 대법원은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진범에게 징역 15년을 확정했다. 2000년 8월 10일 오전 2시, 택시가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 멈추자 뒷좌석 손님은 택시기사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살인범은 12차례나 기사를 찌른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오토바이를 몰고 지나가다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택시기사를 발견하고 신고한 사람은 다방에서 배달 일을 하던 열여섯 살 최모 군. 그러나 경찰은 오히려 그를 범인으로 몰았다.

▷경찰 발표와 달리 ‘범인’의 옷과 신발에선 어떤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검사는 경찰 기록 그대로 기소했다. 사건 발생 2년 10개월 뒤 진짜 범인 김모 씨가 경찰에 붙잡혀 범행을 자백했지만 이번엔 검찰이 경찰의 재수사 요청을 묵살했다. ‘잘못된 수사’가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결국 최 씨는 징역 10년 만기를 다 채우고 2010년에야 출소했다. 재심(再審)을 통해 무죄가 규명된 것은 2016년 11월. 영화 ‘재심’은 이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도 실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1972년 강원 춘천의 만화방 주인 정원섭 씨는 파출소장 딸이 살해되자 범인으로 지목된다. 피해자가 만화방에 자주 드나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가혹행위, 허위자백은 무기징역 선고로 이어졌고 특사(1987년)로 가석방될 때까지 15년을 복역해야 했다. 2011년 재심으로 누명을 벗었을 때는 이미 70대 노인이었다. 수십 년 만에 누명을 벗은 사람들에게 과연 정의는 어떤 의미일까.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을 생각해본다.
 
조수진 논설위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