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전 미국 국무장관(앞)이 14일 사임 회견 후 국무부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 워싱턴 특파원
‘Jump the gun’은 육상선수가 심판의 총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튀어나갈 때 쓰는 말입니다. ‘섣불리 행동하다’라는 뜻이지요.
이 표현은 선거 개표 때 자주 등장합니다. 개표 방송을 보면 승리가 확실히 결정되기도 전에 ‘승자(winner)’ 스티커를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 개표까지 하면 승자가 뒤집어지기도 하는데 말이죠. 이런 걸 ‘jump the gun’이라고 합니다.
‘Lose the locker room’이라는 표현 역시 스포츠에서 유래했습니다.
팀이 연패를 당합니다. 선수들의 사기는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책임은 감독이 집니다. 팀이 연패를 할 경우 감독은 선수들이 모이는 라커룸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미국 스포츠의 관례입니다. 선수들에게 더 이상 존경과 신뢰를 받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Lose the locker room’(라커룸을 잃어버리다, 라커룸에 들어가지 못하다)은 스포츠에서 감독이 선수들의 존경을 받지 못할 때 쓰는 말입니다.
정치에서는 어떻게 쓰일까요. 이달 중순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습니다. 뉴욕타임스는 ‘He has lost the locker room’이라고 썼습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틸러슨 전 장관은 자신이 신뢰하는 몇몇 부하들하고만 대화하고 다른 직원들과는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틸러슨 전 장관의 총애를 받는 부하들은 다른 국무부 직원들에게 이렇게 주문했습니다. “Don’t call us. We’ll call you”(우리에게 전화하지 말라. 필요하면 우리가 당신에게 전화하겠다). 틸러슨 전 장관과 대다수 국무부 직원들 사이에 언로(言路)가 막힌 거죠. 틸러슨 전 장관이 해임된다는 말에 적잖은 국무부 직원들이 속으로 “Hooray(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틸러슨 전 장관과 같은 리더는 부하들의 존경을 받기 힘듭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는 ‘lose the locker room’이라는 표현을 쓴 겁니다.
뉴욕타임스는 ‘He’s lost the locker room’ 뒤에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It is very hard to get it back.’
‘한번 잃은 신뢰와 존경심은 다시 찾기 힘들다.’ 리더들이 명심해야 할 말입니다.
정미경 국제부 전문기자 前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