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불평등 소재 다룬 작품 많아… 학계, 비판적 재해석 움직임
심청전의 한글 활자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한 나라의 공주가 성추문에 휩싸인다. 실체는 없고, 소문만 있을 뿐이다. 하루아침에 정조를 지키지 못한 여인으로 낙인찍힌 공주는 궁에서 쫓겨난다. 헛소문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여성이 기댄 것은 한 남성. 결국 그와 결혼했지만 알고 보니 모두 남편이 악의적으로 꾸며낸 짓이라면?
한국 최초의 4구체 향가로 평가받는 ‘서동요’의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이지만 내용만 보면 주인공인 서동(薯童·백제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 신라 선화 공주에게 가한 성폭력적 서사가 담겨 있다. 이처럼 여성을 억압하는 고전 작품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열풍이 일고 있는 요즘, 한국 사회는 성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학계에서는 성불평등 소재를 다루고 있는 고전 문학작품들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관에 맞게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성 영웅 작품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박씨전’을 보자. 주인공 박 씨는 비범한 능력으로 병자호란 중에 적장을 무찌른 호국 영웅이다. 그러나 정작 포상을 받는 이는 남편과 시댁이고, 박 씨는 외모의 변화에 의해 평가가 달라지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 교수는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는 분위기와 능력이 뛰어남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유리천장’ 등 현재 우리 사회에도 함의하는 바가 큰 작품”이라며 “고전이라고 무조건 가르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이들 작품이 안고 있는 한계 등을 함께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