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과 시진핑.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011년 집권 이후 7년 만에 북한을 전격 방문해 북한 최고지도자의 방중은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어 3대(代)를 이어가게 됐지만 중국을 찾는 이유는 달랐다.
다만 자주노선이나 ‘주체’ 사상을 내세우며 중국의 영향력 하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북한이지만 급한 도움이 필요하거나 궁지에 몰리는 등 전환기를 맞으면 거의 유일한 동맹국인 중국을 찾은 점은 비슷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지명된 후 1983년 당비서 시절 중국에 온 적 있으나 1994년 김일성 이 사망한 뒤 최고지도자가 된 후에는 2000년 이후 모두 8번 중국에 왔다.
북한 정권이 들어선 뒤 김일성의 첫 방중은 1950년 6.25 전쟁 발발 12일전인 5월 13일로 베이징을 찾아 마오쩌둥(毛澤東)과 만나 전쟁 준비를 마무리하는 회담을 가졌다. 앞서 4월 10일부터 25일까지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과 만나 6.25 전쟁에 대한 협의를 한 뒤 베이징에 왔다. 마오는 “미국이 참전하면 중국을 부대를 보내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성은 1961년 7월 10일부터 15일까지 중국을 방문해 이른바 ‘전쟁 시 상호원조’를 규정한 동맹조약을 체결했다. 이 때도 6월 29일부터 7월 10일 소련을 방문해 유사한 내용의 조약을 맺은 직후에 중국에 왔다.
김일성은 그후 미국 헨리 키신저가 방중한 후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후, 중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를 해 동북아 전략 지형이 요동칠 때 중국을 방문해 달라진 전략 환경속에서의 북중 관계를 점검했다.
김일성과 장쩌민.
김정일이 김일성 사망 후 6년 가량이 지날 때까지도 중국을 찾지 않은 냉전 붕괴와 개혁 개방으로 치닫는 중국이 북한의 세습 독재 정권 유지에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도 한 요인이 됐다.
하지만 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소련 중국 및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잇따라 수교하면서 활발히 북방 정책을 펴는 등 체제 경쟁에서 너무 뒤쳐진데 따른 위기감이 작용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2000년 5월 이후 중국을 방문한 것은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의 발전과 변화상을 보기 위한 것도 큰 요인이었다. 김정일이 2001년 두 번째 중국을 방문해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을 보고 “천지가 개벽했다”고 감탄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정일과 후진타오.
김정은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2012년 12월 총서기에 당선된 이듬해 2월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뒤 시 주석 집권 5년 동안 4차례나 핵실험을 했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국제 사회 대국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질 수 밖에 없어 대북 재제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 전쟁’을 불사하고 압박해 오면서 중국이 대북 제재를 강화해 북중 관계도 악화 일로를 걸었다.
김정은의 방중은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고립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6차 핵실험으로 수소폭탄 위력의 핵을 개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을 강행한 뒤 유엔은 10번째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한국 등의 단독 제재와 교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의 적극적인 제재 가담에 김정은이 손을 든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과 북한 미국 정상회담의 물꼬를 트자 김정은은 기민하게 시진핑 주석을 찾았다. 이번 김정은 방중 형식은 시 주석의 초청을 받아들인 것이지만 서로의 필요성이 맞아 떨어졌다.
이번 북중 회담이 언제부터 추진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중국은 제재 강화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여기고 있는데 한국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발표되는 것에 ‘차이나 패싱’을 당했다고 여기고 “정말 다른 곳에 먼저 갈 거냐”고 김정은을 압박했을 수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기에 앞서 “나에게 중국 카드도 있다”는 것을 보여줘 몸값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에게는 제재 완화의 명분을 줄 수 있는 ‘양수겹장’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 晋三) 총리는 이른바 ‘패싱’을 당하고 있는 형국에서 정상회담 등 북일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 지구촌의 안전을 위협하는 ‘공적(公敵)’이자 ‘문제아’였던 김정은이 강대국들로부터 ‘러브 콜’을 받는 상황으로 반전이 일어났다. 다만 아직 김정은이 어느 정도까지 비핵화 의지가 있는 지가 핵심적인 관건이 될 전망이다. 그는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한미가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취하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과거처럼 시간 끌기를 하면서 실리만 챙기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스스로의 페이스를 유지할지 세계가 주목할 것이다.
한국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이 중국으로 먼저 오자 중국은 철통보안으로 어느 국가 정상에 못지않은 예우를 했다. 시 주석과 김정은은 회담과 연회, 공연 관람 등 5시간 이상을 함께 하며 끊어졌던 정상간 교류 재개를 축하했다.
이번 김정은 방중점은 중국으로 달려가게 한 사정은 김일성 김정일 때와 달랐지만 북한이 큰 고비를 만날 때 중국을 찾은 점은 같다는 것을 보여줬다. 중국은 대를 잇는 전통적 우의를 강조하며 김정은을 환영했다.
하지만 이번 김정은 방중이 주는 또 다른 시사점은 중국이 과거와 다름없이 북한을 ‘전략적 완충지대’로서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보여준 점이다. 북한과 중국이 서로를 이런 시각에서 보고 있는 한 ‘한반도 분단 구조’는 변화가 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정은이 북중 관계가 냉랭한 상태에서 한국,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의사를 먼저 밝히자 이 참에 북한이 ‘친미반중(親美反中)’으로 방향을 틀어보라고까지 주문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이번 김정은 방중은 그 같은 희망사항에 ‘꿈깨라’고 일갈하는 셈이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