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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몸노인들의 든든한 황혼 울타리 ‘9988쉼터’

입력 | 2018-03-29 03:00:00

[지금 내 고향에선]




전남 순천시 스포츠산업과가 운영하는 생활체육운영교실 지도자들이 이달 초 해룡면 와온9988쉼터에서 건강체조 시간을 갖고 있다. 순천시 제공

전남 순천은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있는 만에 자리하고 있다. 북쪽 조계산은 승보사찰인 송광사와 백·홍매화로 유명한 선암사를 품고 있다. 남쪽 자락은 갈대밭(5.4km²)과 광활한 갯벌(22.6km²)로 이뤄진 ‘생태계 보고’ 순천만과 도시 팽창을 막아 순천만을 보호하는 순천만국가정원이 있다.

순천은 전형적인 도농복합도시다. 주민 28만198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3만9723명(14%)이다. 노인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홀몸이다. 순천은 농어촌을 끼고 있어 노인이 매년 1000명씩 늘어 고령화 위기에 직면했다.

순천이 고령화 사회의 해법으로 찾은 게 홀몸 노인들끼리 외로움을 달래고 건강도 챙기는 ‘9988쉼터’다. 2013년 4월 처음으로 문을 연 9988쉼터는 현재 65곳이 운영되고 있다.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자는 의미를 담은 9988쉼터에는 연중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 동고동락하며 외로움 달래

27일 오후 8시 순천시 외서면 가용마을 마을회관. 30m² 넓이의 회관 한쪽에 정옥자 씨(73) 등 할머니 5명이 TV 드라마를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들 가운데 90세 이상 할머니는 2명이고 정 씨는 막내다.

가용마을 회관은 순천시의 9988쉼터 1호다. 정 씨를 비롯한 홀몸 할머니들은 5년 동안 동고동락했다. 할머니들은 9988쉼터가 운영되기 전까지 방이 추워도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보일러를 틀지 않았고 혼자 외롭게 끼니를 때웠다.

9988쉼터는 이웃 간 정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공간이다. 노인회에서는 쌀을 가져다주고 이웃들은 파·무·배추김치 등 반찬을 챙겨준다. 정 씨는 “낮에는 할머니 14명이 경로당에 모여 놀다가 밤이 되면 돌아가고 5명만 남아 저녁밥을 먹고 같이 잠을 잔다”며 “5년간 함께 살아보니 너무 좋다”고 했다.

같은 시각 순천시 황전면 봉덕마을 경로당. 이장 이과매 씨(63)와 할머니 5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마늘을 까고 있었다. 경로당은 가장 최근 문을 연 9988쉼터(65호)다. 이 마을 9988쉼터는 몸이 불편한 홀몸 노인이 많다는 주민들의 건의로 지정됐다.

이곳에서 함께 사는 할머니 2명은 경미한 치매를 앓고 있다. 이날 오후에도 웃음치료사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치매예방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치매예방 프로그램은 1주일에 두 번씩 이뤄진다. 다음 달 3일에는 구강 무료치료가 진행된다. 이 씨는 “홀몸 노인은 쓰러져 다쳐도 발견하기 쉽지 않아 함께 모여 사는 9988쉼터 지정을 건의했다”며 “강사들이 찾아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건강도 챙길 수 있어 할머니들이 다들 좋아한다”고 했다.

○든든한 황혼 울타리

순천시는 경로당을 든든한 황혼 울타리로 만들었다. 9988쉼터로 변신한 경로당은 홀몸 노인들이 함께 살면서 고독사 등 위급 상황을 예방하는 사회안전망이자 주민 소통 공간이 됐다. 순천시는 9988쉼터를 이용하는 홀몸 노인 441명의 비상연락망을 만들고 1쉼터 1기관 결연을 맺었다. 손씻기 365일 운동과 통합건강교육, 100세 요리교실, 한글작문교실, 요가·체조 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9988쉼터가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 모델이 됐다.

순천시는 9988쉼터 노인들에게 매달 4만 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쉼터에는 겨울철에 매달 난방비 20만 원과 개·보수 비용도 지원된다.

김청수 순천시 노인장애인과장은 “9988쉼터 외에도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개발해 고령화 사회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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