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협력사들의 한숨
납품 물량 줄며 생산라인 썰렁… 은행 어음할인 외면 유동성 최악
2, 3차 협력사는 이미 문닫은 곳도
산은 “한국GM에 단기자금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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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협력사 천일엔지니어링 조환수 대표가 27일 회사에 진열돼 있는 제품들과 GM에서 받은 상패를 바라보고 있다. 천일엔지니어링은 2012년부터 매년 ‘올해의 GM 협력사’로 선정됐다. 인천=변종국 기자 bjk@donga.com
27일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에 위치한 천일엔지니어링. 사무실에서 만난 조환수 대표는 자체 개발한 자동차 엔진 부품을 만지며 멋쩍게 웃었다. 한국GM이 위기에 빠지면서 직원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설립된 천일엔지니어링은 플라스틱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 GM에만 제품을 100% 납품하는 1차 협력사다. 대표 상품은 ‘워터 아웃렛’(엔진에 냉각수를 뿌리는 부품)과 ‘커버밸브보디’(엔진 오일의 누유를 막는 제품) 등이다. 금속이 아닌 고강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부품이어서 자동차 무게를 줄이고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기술과 품질을 인정받아 천일엔지니어링은 2012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GM이 주는 ‘올해의 GM 협력사(SOY·Supply Of the Year)’에 선정됐다.
2, 3차 협력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최근 천일엔지니어링의 2차 협력사 대표는 고심 끝에 다음 달 공장 문을 닫기로 했다. 한국GM 물량이 줄자 2차 협력사가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조 대표는 “2차 협력사 중 3곳이 문을 닫았다. 오랫동안 함께 일한 동료들과 업체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한국GM 사태가 빨리 해결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매출 100%를 한국GM에 의존하는 협력사는 86곳으로 종업원 수는 1만8000여 명이다. 한국GM에 매출을 50% 이상 의존하는 기업은 150개가 넘는다. 협력사들은 한국GM이 없어지면 협력사 직원 약 16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산한다.
협력사들이 한국GM이 정상화되길 바라는 건 단순히 납품 물량 유지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GM이 협력사들의 제품을 보증해줘 GM 본사와 전 세계 GM 공장에 수출을 늘릴 수 있었다. 한국GM 협력사들이 GM 본사 등에 수출하는 규모는 연간 약 2조50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또 다른 협력사 신진화학의 문창호 대표는 “한국GM이 없어지면 수출은 사실상 끝난다고 보면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2016년 GM 본사가 선정한 SOY 107개 업체 중 한국 기업은 27곳이었다.
협력사들의 자금 유동성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협력사들은 납품 대금으로 한국GM에서 60일 만기 전자어음을 받는다. 이후 전자어음을 은행권에서 3%대 금리로 할인(외상채권담보매출·외담대)받아 운영 자금으로 쓴다. 그런데 최근 은행들이 어음 할인을 거부하고 있다. 본보가 한국GM 협력사들과 거래하는 시중은행의 외담대 한도를 분석해보니 2015년 말까지 약 7900억 원에 달하던 한국GM 협력사 대상 외담대 한도는 2016년 말 3500억 원, 지난해 말에는 1300억 원으로 줄었다. 유일하게 외담대 한도를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행(1300억 원)을 빼면 사실상 나머지 은행 모두 대출한도를 0원으로 축소한 것이다. 한국GM 협력업체 오토젠 조홍신 대표이사는 “한국GM 협력사란 이유만으로 은행들이 대출한도를 축소해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도산 위기에 몰려 있다”고 말했다.
인천=변종국 bjk@donga.com / 강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