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금지곡과 저항의 역사
유부녀가 외간 남자와 정을 나누려다가 남편에게 들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민요조로 부른 ‘범벅타령’ 앨범. 김문성 씨 제공
김문성 국악평론가
많은 사람들은 노래 금지의 역사를 1960, 70년대에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민족성을 잘 드러낸 ‘아리랑’과 ‘봉선화’ 같은 노래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자 일제는 1933년 축음기레코드 취체 규칙을 제정해 통치에 방해(치안방해)가 되거나 풍속을 어지럽히는 노래(풍속괴란)라는 이유로 음반 발매 금지 조치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서울, 조선 등 민족성을 연상시키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 상당수가 치안방해를 이유로 금지됩니다. 민족적 정서를 대표하는 아리랑도 마찬가지였죠.
또한 풍자적인 사설을 가진 민요곡들이 풍속괴란을 이유로 발매 금지됩니다. 난봉가류가 많았으며, 단일 곡목으로는 ‘범벅타령’ 6종이 발매 금지됩니다. 범벅타령은 유부녀가 남편 몰래 외간 남자를 집으로 불러들여 통정하려다가 이를 의심한 남편에게 들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민요조로 엮어 부른 노래입니다. 일부종사의 통념에 배치된다는 것이 구체적인 금지 이유였습니다.
금지곡으로 지정되면 음반사들은 곡목을 대체해 재발매하거나 발매를 아예 중단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장을 죽인 의기 논개, 계월향을 노래한 오케레코드의 장한가(長恨歌)는 발매와 동시에 금지곡으로 묶였습니다. 당시 음반사가 장한가를 민요 ‘사발가’로 대체해 다행히 뒷면의 민요가 살아남았지만, 철쇄처럼 음반사가 대체 발매를 하지 않은 경우 뒷면에 실려 있던 이애리수의 ‘결혼전선 이상없다’는 가요사에서 목록조차 확인되지 못하는 운명을 맞아야 했습니다.
김문성 국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