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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귀농 준비… 내 생애 가장 즐거운 순간”

입력 | 2018-03-29 03:00:00

[도심이 키우는 ‘도시농부’]<4> 시골서 인생2막 여는 사람들




지난해 10월 경북 영주시 소백산 귀농드림타운에서 노윤옥(오른쪽), 황우석 씨 부부가 직접 가꾼 배추 수확을 앞두고 활짝 웃고 있다. 서울시 제공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시구로만 생각했던 ‘고향’은 노윤옥 씨(49·여) 꿈에서도 잊히지 않았다. 스무 살 때 직장을 찾아 서울로 올라온 지 20년쯤 되면서부터였다. 일이 고된 날 잠이 들락 말락 할 때면 고향인 충남 서천의 중학교 등굣길이 떠올랐다. 비가 온 다음 날 공기, 모내기를 마친 연녹색 들판. ‘은퇴하면 시골로 돌아가야지.’

은퇴라는 말을 되뇌는 횟수가 늘어나던 2015년 가을 어느 날. 노 씨는 자신이 다니는 물류서비스 대행회사에서 정년퇴직할 날을 꼽아봤다. 10년이 더 남았다. “10년 후에는 늙은 몸만 남아있을 것 같았어요. 그동안 돈 버는 기계로 살 생각하니 막막했고….”

직장을 다니며 귀농을 준비하려 했지만 오후 9, 10시에 퇴근하는 일상에서 쉽게 짬이 나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 2016년 초 직장을 그만뒀다. 중장비 기사인 남편 황우석 씨(50)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해 4월부터 석 달간 강서구 평생학습관에서 약초관리사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준비하던 연말 ‘서울시 체류형 귀농 지원자 모집’이라는 기사를 봤다. ‘서울시에서 귀농 희망자에게 지역 귀농센터 체류 프로그램 참가비용 60% 안팎을 지원한다. 지역 귀농센터에서 8∼10개월간 농사일을 배우고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1월 바로 신청했다. 충북 제천, 경북 영주, 전북 무주, 전남 구례 강진 등 5곳 귀농센터 가운데 남편이 일감을 찾을 수 있을 만한 건설 현장에서 가까운 영주를 골랐다.

두 달 뒤인 3월 노 씨는 남편과 함께 소백산 귀농드림타운에 입교했다. 대학생 아들 형제는 서울에 남겨 뒀다. 황 씨는 “아내가 워낙 가고 싶어 했고 10개월이면 연습 삼아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부의 ‘귀농 연습’은 만만치 않았다.

토양이나 병해충 관리 같은 기본은 물론이고 어떤 농부가 될 것인지 자신의 흥미와 적성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양봉 양계 유기농 등의 전문과정에서 노 씨는 종자기능사 자격을 택했다. 하루 오전 6시 반∼9시, 오후 7∼9시 두 차례 이론과 실습 교육을 매주 두세 차례 들었다. 그해 10월 배추씨와 무씨를 구별할 줄 아는 종자 전문가 자격증을 땄다.

‘교양수업’에도 충실했다. 2주에 한 번꼴로 ‘사랑방 모임’을 다니며 동네 분위기를 익혔다. 할당된 132m² 남짓한 텃밭에서 배추, 고추, 쑥갓, 토마토 등을 길렀다. 양봉 실습을 겸해 오전 5시부터 10시까지 꿀벌농장에서 꿀을 채집하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입교 넉 달 만에 노 씨 부부는 영주 정착을 결심했다. 당초 준비 기간을 3년 보고 다른 지역에서도 살아보려 했지만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살아 보니 마음이 편하다”며 공감했다.

부부는 영주시 부석면에 농지 8200m²(약 2500평)를 사들였다. 절반은 벼, 절반은 사과농사를 짓기로 했다. “사과로 유명한 영주라서 관련 교육도 많이 받았고 사과의 평당 소득률이 다른 작물보다 높은 편이라 선택했다”고 노 씨는 농사꾼처럼 말했다. 사과나무를 심을 땅은 기름지게 관리해 놓고 따로 사과밭 3000m²를 빌렸다. 부부는 “겨우내 가지를 쳤고 봄에 꽃이 피면 솎아줘야 한다. 지난해가 인생에서 가장 즐거웠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소백산 귀농드림타운에서 교육받은 30가구 중 28가구가 귀농했다. 이 중 20가구는 영주에 정착했다. 서울시는 올해도 체류형 귀농사업을 지원한다. 시 도시농업과 한석규 과장은 “막연하게 귀농을 꿈꾸던 시민들이 직접 살면서 인생 2막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