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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서울!/조현일]제주 바람아, 멈추어다오

입력 | 2018-03-30 03:00:00



조현일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은 날씨를 정확히 예측하고 화공을 이용해 2만 명의 병사로 80만 명의 조조 군대에 대승을 거둔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하늘과 땅의 기운을 읽어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애쓴다.

제주 생활 4년 차. 사람은 때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제주생활에서 중요한 날씨는 강수와 바람, 습도다. 그리고 날씨는 아니지만 중요한 자연현상이 물때다.

농사를 짓는 집들은 작물의 이식과 수확 시기 또한 그날의 강수량에 따라 좌우된다. 비 소식이 없어 집 지을 자재를 육지에서 주문해서 짐을 실은 트럭들이 들어오는 날. 자재를 내릴 장비며 인력들이 준비하고 있는데, 막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지게차로 20분이면 끝날 작업이 자재에 비를 맞히면 안 돼서, 보양 작업을 하느라, 2시간을 훌쩍 넘어섰다. 가끔은 사람이 예측하지 못하는 비 소식으로 낭패를 보기도 한다.

제주에서도 바람이 강하기로 유명한 시골마을 한경면. 도시에서는 작은 태풍으로 취급될 정도의 바람이 이곳에선 자주 불어온다. 집 주변 단속에 철저해야 한다. 예전에 연세로 살던 집에서는 바람으로 인해 큼지막한 집 대문이 통째로 날아간 적이 있다.

낚시를 좋아해서 은퇴 후 생활을 제주에서 하시는 형님에게도 바람은 알 수 없는 존재다. 낚시를 갈 때는 바람의 방향을 알고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람이 심한 날이 아니더라도 앞바람이 불면 원하는 곳에 찌를 던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여름이면 습도와 전쟁을 해야 한다. 뜨거운 햇볕에도 빨래가 더디 마르고, 집 안에선 종일 제습기가 바쁘게 움직인다. 제습기 없인 집 구석구석에 곰팡이가 슬게 되는 경우도 많다. 집 안 환기를 시키고, 밀린 빨래를 하기 위해선 습도를 주의 깊게 확인해야 한다.

섬 제주에선 집집마다 물때가 적힌 큼지막한 달력이 하나씩 걸려 있다. 바다에서 업을 삼는 일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물때는 제주생활에서 중요하다.

도시에서 얼마나 많이 하늘을 보았던가? 제주 생활에선 수시로 하늘을 본다. 도시 하늘보다 제주 하늘이 더 예뻐서는 아니다. 날씨를 수시로 체크해서 그날 해야 할 일과 준비해야 할 일을 결정해야 하기에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시골 생활에선 시간적 여유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인 것이다. 하늘을 보고 구름의 색깔과 모양, 바람의 방향을 보고 비가 올지 안 올지 설전을 벌이는 것은 제주에선 2명 이상 모인 곳에선 흔히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적벽대전 속의 제갈량 모습을 시골마을 나이 든 삼촌, 농사짓는 형님, 바다에 나가는 동생에게서 볼 수 있다.
 
조현일
 
※ 필자는 서울, 인천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다 제주로 이주해 여행 숙박 관련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