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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 톡톡]행복은 미래에?… 아니요, 지금 바로요

입력 | 2018-03-30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취업, 결혼, 아파트 장만’보다 ‘갓 구운 빵 냄새, 반려동물과의 입맞춤, 반듯하게 쌓인 수건’. 요즘 청년들은 미래의 불확실한 성취보다 현실의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다. 젊은이들의 마음을 흔드는 소확행에 대해 알아봤다. 》
 
▼ 소소하지만 확실해

“카타르시스의 어원이 ‘배설’입니다. 무언가를 내보낼 때 느끼는 쾌감으로 배변 역시 포함되죠. 대변은 하루 내내 함께하니 제 분신과도 같습니다. 이를 저세상(?)으로 보낼 때 최대한 예의를 차리고 싶어요. 그래서 그랜드 하얏트 호텔처럼 개방된 5성급 호텔 화장실에서 볼일을 봅니다. 볼일 후 손을 닦을 수 있는 일회용 수건도 있어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은 카타르시스를 배가시키죠. 이야말로 매일 느낄 수 있는 소확행 아닐까요?” ―이모 씨(40대·회사원)

“비 오는 날 새벽 어스름 들어찬 방 안에서 극세사 이불에 얼굴 비비기. 맑은 날엔 유튜브로 빗소리 ASMR(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소리가 담긴 영상)를 틀어놔요. 저만의 아늑한 공간 속에 있으면 모든 고민이 사라집니다.” ―남연호 씨(23·대학생)

“‘소확행’은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 말고 소소하지만 내가 일상 속에서 확실히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말해요. 체념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청년들의 ‘2018 생존법’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집을 사기 위해 무조건 돈을 모으기보단 여행을 다닙니다.”―김대철 씨(30·금융계 종사)

“박사과정은 밟지 않을 예정입니다. 불분명한 일에 나를 갈아 넣기 두려워요. 결혼 생각도 없습니다. 배우자가 생기면 삶의 함수가 복잡해지니까요. 당장 살아가기도 벅찬데 미래는 웬 말이에요. 저녁에 맥주 한잔하며 드라마 보면 그게 행복이죠.”―김모 씨(20대·대학원 석사과정)

“영화 ‘리틀 포레스트’ 주인공처럼 매일 계절의 흐름을 느끼고 싶어 제철 과일로 담금주를 만듭니다. 달콤한 딸기주 한 잔 마시면 오늘 치 봄을 먹는 기분이랄까요? 취업 걱정은 잠시 뒤로하고 ‘현재를 즐기는 저만의 방법’이에요.”―신혜선 씨(26·경희대 산업디자인과 4학년)

“미래를 염려하며 바쁘게만 살아가면 스트레스로 심신이 지치고 맙니다. 교감신경계가 과하게 각성해 심장 박동 수와 호흡 속도가 올라가죠. 현재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야 해요. 그러면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돼 긴장된 근육이 풀리고 심장 박동 수가 내려가 몸의 균형이 맞춰집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증상이 치유되죠.”―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욜로를 이긴 소확행

“소확행은 확실히 요즘 뜨는 개념입니다. 지난 1년간 네이버 검색 트렌드를 살펴보면 ‘학자금대출, 청년실업, 비혼’ 세 단어 검색량 총합이 138만9160건에 이릅니다. 청년 세대 버즈(온라인 이슈를 뜻하는 용어)로는 ‘순간’ ‘즐기다’ 두 단어가 많이 나오죠.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들이 현재의 즐거움을 찾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작년 우리나라에 욜로 열풍이 불었고 ‘욜로족을 잡아라’ 같은 욜로 마케팅이 쏟아졌죠. 그런데 올 1월부터 소확행 네이버 검색량이 욜로를 앞질렀어요. 현재 15만2330건인 ‘혼술’보다 높은 17만9820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이진형 데이터마케팅코리아 대표

“여행업계도 소확행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여행도 일상 속 경험이기에 소확행과 연결될 수 있죠. 실제로 개인 만족도가 중요한 자유여행 문의가 늘었습니다. 여행지로는 일본 가가와현의 나오시마섬을 추천해드려요.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는 테마촌으로 여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소지승 여행이필요해 대표

“카페 트렌드가 ‘빨리빨리’에서 ‘여유로움’으로 변했어요. 저도 카페에 일부러 큼지막한 테이블을 듬성듬성 들여놨어요. 손님들이 넓은 공간에서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랐거든요. 카페 안은 제가 좋아하는 예쁜 그릇과 여행 기념품으로 가득 채웠답니다.”―서의정 씨(30·카페 ‘Rozy Finch’ 운영)

“‘플라이어스’는 버킷리스트를 실현하는 모임입니다. 일상 속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해요. 나만의 글쓰기부터 야경을 즐기는 연남런닝맨, 지니어스 두뇌대결게임까지. 플라이어스 멤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고 있어요.”―박민지 플라이어스 대표

소확행도 감지덕지

“‘따뜻한 햇볕 속 낮잠’요? 저는 살기 위해 자요. 데이 근무(새벽∼오후)가 끝나고 집에 오면 밥도 못 먹고 침대에 쓰러집니다. 3교대 근무라 약속 잡기도 어려워요. 하루 버텨내느라 진이 빠지죠. 이 일을 계속할 건지 고민할 시간조차 없어요.”―김모 씨(26·간호사)

“수험생에게는 심리적 여유가 없어요. 오전 7시에 집을 나서 오후 11시에 귀가합니다. 지하철과 식당, 어디서든 행정법 핸드북을 읽죠. 유튜브 영상이 보고 싶거나 음악을 듣고 싶어도 죄책감이 들어 억지로라도 공부해요.”―이승찬 씨(24·공무원시험 준비)

“아이에게 사탕을 주며 ‘엄마가 올 때까지 먹지 않고 기다리면 하나를 더 줄게’라고 해봅시다. 미래의 보상이죠. 그런데 만약 ‘엄마가 안 온다면’요? 청년 세대는 ‘엄마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눈앞의 사탕을 먹으며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정말 안타까운 쪽은 이런 합리화조차 못 하는 청년들입니다. 까치발을 든 채 계속 서 있으라 하면 버틸 수 있을까요? 지쳐 무너집니다. 그게 가장 위험해요.”―부수현 경상대 심리학과 교수

“청년 세대가 자신의 사회 계층적인 환경을 인지해 소비와 사회적 행동을 조절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확행 추구는 합리적인 행동이죠. 그러나 취업난, 주거난과 같은 청년 세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노동시장이 개선돼야 합니다.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고 착한 성장이 실현돼야 하죠. 문화적 욕구가 강한 청년들이 소확행으로도 한계에 부딪히면 근본적인 사회구조를 바꾸자는 목소리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청년들이 이해됩니다. 옛날에야 집을 사고 가족도 부양했죠. 지금은 모든 걸 다 갖추기 힘들어요. 인생은 짧습니다. 자신을 희생했던 기존 세대의 삶을 따를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직접 콩나물 무치고 기침 콜록대며 연탄재를 치웠어요. 다시 산다면 요즘 사람들처럼 ‘나’를 위해 살고 싶습니다.”―김모 씨(77·전업주부)

“일본의 청년 세대는 부모 세대와 달리 경제 호황기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차와 집을 사기 위해 대출을 받고 이를 갚으려 끊임없이 일하는 부모를 보며 물질적인 부분이 인생의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청년들은 미래에 대해 기대를 낮추고 작은 행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아사히나 유키 씨(29·일본 도쿄도)

“성취 지향적이던 사회 분위기가 세계적으로 소소함이 중시되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어요. 덴마크의 ‘휘게’, 프랑스의 ‘오캄’, 스웨덴의 ‘라곰’ 모두 ‘소박함’을 추구하는 현상이죠. 이러한 경향은 청년 세대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나지만 앞으로 중장년층에도 퍼질 여지가 있습니다.”―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김수현 인턴기자 성균관대 사회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