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1> 저승에서 온 조상님 편지
《‘예기(禮記)’는 중국의 고대 유교 경전입니다. 다양한 일상생활 속 예절을 다루고 있죠. 한국의 전통 예법 곳곳에 반영돼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천 년이 흐른 지금, 때로 그 예법은 현대와 맞지 않아 오히려 갈등을 일으키죠.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예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신(新)예기’ 첫 회는 한국인의 명절 스트레스 주범인 차례 및 제사에 대해 다룹니다. 죽은 조상님 모시다가 산 자손들 싸움난다는 제사. 조상을 기리면서도 가족의 화합을 도모할 방법은 없을까요.》
■ 26년 제사 맏며느리의 하소연
얼굴도 모르는 남편의 조상님들. 4월 6일 한식이 또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네요. 제게 한식이 왔다는 건 ‘시제(時祭)’ 제사상을 또 준비해야 한단 의미죠. 지난 설 명절 차례상 차리다 삐끗한 허리가 아직도 시큰거리는데…. 돌아서면 또 돌아오고, 눈을 뜨면 어느새 코앞인 제사가 이젠 정말 신물 납니다. 26년째니까요. 조금만 지나면 제가 제사상을 받을 판이네요.
남편 집안 뼈대를 세우느라 제 뼈는 녹아내렸습니다. 3년 전 무릎 수술을 한 다음 달에도 제사상을 차리라고 했을 땐 20년 넘게 쌓인 서러움이 터져 차라리 남편과 헤어지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아가씨는 여자라고 빠지고, 서방님과 동서는 직장일이 바쁘다고 빠지고…. 맏며느리의 숙명이라지만 가끔 와서 차려놓은 밥만 먹고 가는 형제들을 볼 때면 속에서 천불이 납니다.
심지어 아버님은 “제사엔 여자가 나서는 게 아니다”라며 정작 제사를 올릴 때는 저를 뒤로 물러나게 하셨죠. 다음 주말이면 저는 또 묘소 끄트머리에 없는 듯 서 있을 겁니다. 이 집에서 전 가족인가요, 식모인가요. 이런 전통, 이제 저도 더는 싫습니다.
■ 하늘나라 시증조모의 조언
아가. 우릴 원망하는 증손자 매늘아가. 나는 저승에 사는, 니 시아부지의 할매 되는 사람이다. 니가 내가 사는 신줏단지를 하도 째려봐싸서 니 꿈속을 빌려 너에게 편지를 쓴다. 니가 그렇게 화를 내싸니 니 밥을 받아먹는 내 맴도 편치가 않다. 지난 설에 얻어먹은 제삿밥도 여즉 명치끝에 걸려있구나.
내가 저승에 와서 다른 집 자손들 사는 것을 보니 우리 집이 너무 고리타분혀. 내가 여그서 들었다만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참말로 조상복 받은 자손들은 제삿날 다 해외여행 가 있다’는 말이 있다믄서. 나는 너도 그렇게 한번 살아봤음 쓰것다. 그래야 조상복 받았다 할 것 아니냐. 내 신줏단지만 챙겨가믄 내가 귀신같이 알고 따라갈랑께. 거기 가서 느그들이 먹고자픈 현지 음식으로 제사상 차리고 즐겁게 먹어. 나도 덕분에 해외여행하면 을매나 좋냐.
내가 엊그저께 저승 경로당에서 김 씨 영감님을 만났는디, 그 양반의 손주가 그런다드만. 그 집은 4남 1녀인디 몇 년 전부터 부모, 조부모 제사를 1년에 한 번 어버이날이 있는 주 토요일로 합쳤단다. 2년 전부터는 다 같이 여행을 가서 거기서 제사를 지낸다는디 그렇게 화목할 수가 없다드만. 작년에는 제주도로 놀러가 제사를 지냈는디 덕분에 김 씨도 젯밥으로 전복부터 활어회, 오메기떡, 치킨, 아이스크림 케이크까지 별거 별거 다 먹어봤다고 죙일 자랑이여. 너도 그렇게 해부러라. 뭣이 중헌디?
그라고 요새는 종갓집들도 겁나게 간단하게 제사 지낸다 안 허냐. 1000원짜리에 그려진 퇴계 이황 선생 알지? 얼마 전 그 양반을 뵀는디 그 집이 종갓집이 되다 보니 여자들이 부담시럽다고 시집을 안 온다고 하더라고. 그 바람에 종가에서 제사를 엄청 쭐였다 하드만. ‘간소하게 차려라’가 그 집안 어른들의 가르침이란다.
이러코롬 설명을 했는디도 느그 시아부지가 계속 제사 타령을 하믄 “호호, 아버님도 돈을 좀 쓰세요”라고 함 혀봐. 지금 내 옆집에 충남이 고향인 이 씨 영감님이 사는디, 그 집 종친회는 제사 때 자손들 모을라고 묘제에 참석하면 무조건 인당 5만 원을 준다더라. 배 속의 아기까지 1명으로 쳐서 준다드만. 이 씨 영감님 아들은 매번 애들 싹 다 데려가서 수십만 원 벌어온다더라고. 그 말 듣고 우스워서 혼났다야.
맏매느리니까 니가 다 하란 것두 거시기한 소리지. 내가 여그서 고려 때 조상님도 뵙고 조선 때 조상님도 뵀는디, 오히려 그때는 남녀 할 것 없이 형제간에 돌아가며 제사 지냈다 하더라고. 음식도 혼자 안 허고 형제마다 각자 혀서 한데 모아놓고 제사를 지냈단다. 딸만 있는 집은 사위가 장인 장모 제사 모시고 손녀가 외조부모 제사 지내는 집도 더러 있었다더라.
또 제사 때 너를 뒤로 빠지라 하는 것은 참말로 잘못된 것이여. 원래 종갓집들은 조상한테 올리는 술 석 잔 중 두 번째 잔은 무조건 맏매느리에게 맡긴다드라. 젯밥 차려준 당사자인디 을매나 고맙냐. 며느리 없이 집안이 돌아가냐고. 그것을 모르고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여.
아가. 너도 들었겄지만 지난 추석 때 젊은이들이 ‘제사를 없애자’믄서 청와대에 6121명이나 청원을 했다지? 오죽하믄 자손들이 나라님께 청원을 다 혔겄냐. 내가 지금 꿈속에서 전한 말을 개꿈이라 생각허지 말구 새겨들어. 못 믿겠으믄 저 양반들헌테 물어봐.
:: 도움말 주신 분들 ::
△ 김경선 성균관 석전교육원 교수 △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교육과장 △ 김연화 김포시 건강가정지원센터장 △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연구실장 △ 양무석 대전보건대 장례지도과 교수 △ 유건영 웰다잉 강사(‘명절증후군을 없애는 젊은이를 위한 제사법’ 저자) △ 이승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이욱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원 △ 이치억 성균관대 초빙교수(퇴계 이황의 17대 종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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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isityou@donga.com·이미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