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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 눈앞에 두고… 한눈판 트럭에 산산조각난 ‘소방관의 꿈’

입력 | 2018-03-31 03:00:00

아산서… 도로위 개 구하려던 女소방관 1명-女교육생 2명 참변




처참하게 구겨진 차체 30일 충남 아산시 둔포면 국도 43호선에 25t 화물차(왼쪽 차량)와 소방펌프차(오른쪽 차량)가 심하게 부서진 채 서 있고 119대원 등이 현장을 수습 중이다. 소방차는 화물차에 들이받혀 무려 84m나 밀려간 끝에 멈췄다. 그러나 이 사고로 개를 구조하기 위해 출동했던 여성 소방관 3명이 숨졌다. 아산소방서 제공


여성 소방관 세 명이 출동 현장에서 숨졌다. 한 명은 6개월 전 동료와 결혼한 신혼이었다. 다른 두 명은 다음 달 16일 정식 소방관이 될 임용예정자였다. 이들은 도로를 오가는 개 때문에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뒤에서 화물차가 덮치면서 변을 당했다. 신혼의 단꿈과 “소중한 생명을 구하고 싶다”던 두 예비 소방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 84m나 떠밀려간 소방차

“개가 도로에 있어요.”

30일 오전 9시 27분 충남 아산소방서 상황실로 걸려온 신고 전화다. 아산소방서 둔포119센터의 김신형 소방교(29·여)가 동료 이모 소방사(26)와 출동했다. 소방관 임용을 앞둔 교육생 문모 씨(23·여)와 김모 씨(30·여)도 함께했다.

오전 9시 45분경 이들을 태운 소방펌프차(소방차)는 아산시 둔포면 신남리 국도 43호선 갓길에 도착했다. 키가 50cm 정도인 중형견 한 마리가 편도 3차로 도로의 가드레일 옆에서 발견됐다. 김 소방교 등이 소방차 앞쪽에서 구조 활동을 준비하는 순간 3차로를 달리던 화물차(25t)가 소방차를 들이받았다. 추돌 충격으로 소방차는 84m나 앞으로 밀려간 뒤에야 멈췄다. 소방차 뒷부분은 종이조각처럼 구겨졌다. 김 소방교와 문 씨, 김 씨는 비명을 지를 새도 없었다.


경찰은 화물차 운전사 허모 씨(62)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측정 결과 음주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전방을 제대로 주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허 씨는 경찰에서 “시속 75km 정도로 운행했고 사고 지점에서 라디오 채널을 맞추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고가 난 구간은 2016년 11월 개통됐다. 제한속도가 90km나 된다. 올해에만 교통사고가 5건이나 발생한 ‘마의 구간’이다.

이날 사고는 소방청이 동물 포획 등 생활안전 신고처리 기준을 마련한 지 이틀 만에 발생했다. 소방당국은 “도로를 오가는 동물은 2차 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출동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운전 중 개를 발견해 신고했던 A 씨는 “2차 사고를 우려해 신고했는데, 소방관 3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죄책감이 든다”고 말했다.

숨진 세 소방관의 합동 분향소는 아산시 온양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혹여 사람들이 다칠까 쏜살같이 달려갔다가 변을 당했다. 세 분의 헌신을 잊지 않겠다”고 위로했다.

○ 인명 구조가 소명이었는데…

김 소방교는 ‘부부 소방관’이다. 지난해 9월 다른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동료와 결혼했다. “잘 어울린다”며 소방관 선배들이 적극적으로 두 사람을 지원했다. 3년 연애 끝에 두 사람은 부부가 됐다. 김 소방교는 밖에서 씩씩한 소방관이지만 집에서는 싹싹한 딸이자 며느리였다. 빈소를 찾은 김 소방교의 어머니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며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얼마 전 집안 초상을 치르느라 며느리가 고생해 지난달 집으로 불렀더니 ‘어머니가 좋아하신다’며 프리지어를 사 왔다. 아직 집에 그 꽃이 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피아노를 잘 치는 김 소방교에게 자신이 물려받은 피아노를 선물하기도 했다.

문 씨와 김 씨는 지난해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지난해 12월 26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충청소방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19일부터 소방서 실습을 시작했다. 실습만 마치면 정식 소방관이 된다.

오랜 꿈이었던 소방관 임용을 앞둔 문 씨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숨을 쉬는 한 희망은 있다(dum spiro, spero)’라는 라틴어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응급구조사가 될 거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주위에서 험한 일이라고 말렸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뜻을 꺾지 않았다.

대학생 때도 캠퍼스의 낭만을 뒤로하고 3년을 독하게 공부한 끝에 응급구조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가족들은 문 씨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문 씨 아버지는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최고의 행복이다”며 딸을 격려했다.

고된 교육 기간에도 문 씨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그때마다 ‘처음 마음가짐을 지키자’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소방관 정복을 받은 날 그는 “평생 입을 옷이지만 막상 입으니까 가슴이 벅차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고통스럽고 힘든 현장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문 씨는 끝내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문 씨 아버지는 빈소에서 “더 공부해서 응급구조학과 교수까지 되겠다고 했는데…”라며 엎드려 오열했다.

문 씨의 동기인 김 씨는 ‘늦깎이 소방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참변을 당했다. 김 씨는 응급구조학과를 졸업하고 소방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한 끝에 5년 만에 합격했다. 그래서 김 씨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훈련에 임했다. 또 소방학교에서 보건부장을 맡아 훈련받다 다친 동생들을 살뜰히 챙긴 맏언니였다. 교육 기간에 부친상을 치른 뒤 장례를 도와준 동기들에게 고맙다며 하나씩 작은 선물을 할 만큼 속이 깊었다.

정부는 김 소방교에게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 추서를 결정했다. 정식 소방관은 아니지만 문 씨와 김 씨에게도 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 또 이들의 죽음을 기리기 위한 추가 방안 마련을 검토 중이다.

아산=지명훈 mhjee@donga.com·최지선·김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