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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평인]NYT 속의 유관순

입력 | 2018-03-31 03:00:00


언론에서는 유명인의 부고기사를 미리 써둔다. 너무 일찍 써두는 바람에 쓴 기자가 먼저 죽는 경우도 있다. 뉴욕타임스(NYT)의 영화연극 기자인 멜 거소는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부고기사를 미리 써두고 2005년 사망했으나 테일러는 정작 2011년에 세상을 떠났다. 산 사람을 두고 부고기사를 써둘 수 있는 것은 부고기사가 실은 죽음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삶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뜻밖에 유관순 열사의 부고기사가 순국 98년 만에 최근 NYT에 실렸다. NYT는 1851년 창립 이래 자사의 부고기사가 백인 남성에 치우친 데 대한 반성으로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지만 간과된 여성 15명의 부고기사를 기획 시리즈로 싣고 있다. 동양 여성은 유관순을 포함해 청(淸) 말 중국 최초의 여성 혁명가 추근(秋瑾), 볼리우드 개척시대에 인도의 메릴린 먼로로 불린 여배우 마두발라 등 3명이다.

▷NYT는 영국 작가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가 일으킨 반향을 그의 생전에 알고 있었지만 오늘날 영어권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설을 쓴 주인공의 부고기사를 쓰지 않았다. 부고기사를 놓친다는 건 신문사로선 뼈아픈 일이다. 사망 사실을 알지 못해 부고기사를 놓치는 경우보다는 그 인물의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놓치는 경우가 더 뼈아프다.

▷3·1운동으로 7000명이 사망하고 4만6000명이 체포돼 수감됐다. 수많은 희생자 속에 유 열사는 사망할 당시만 해도 널리 알려지지 않다가 광복 후에야 소설가 전영택의 발굴에 힘입어 비로소 널리 알려졌다. 식민시대의 ‘간과’를 견뎌내고 뒤늦게나마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평가받게 된 것은 다행이다. 선조들의 위대한 희생이 있었기에 내일로 창간 98주년을 맞는 동아일보도 태어날 수 있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