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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살로 엄마 놀리기, 아이돌의 가슴골 파인 복장이 불편한 이유

입력 | 2018-04-01 15:21:00

출처 픽사베이


“여보! 누워있지만 말고 설거지 좀 도와줘요.”(아내)

“뭐? 나 일 시킨다고 엄마한테 이른다?”(남편)

어느 아침 드라마 대사가 아니다. 대략 4, 5세부터도 즐겨보는 KBS 1 TV 만화영화 ‘헬로 카봇5’의 한 장면이다. 이 편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손자가 보고 싶은 할머니가 며느리와 아들에게 꾀병을 부린다. 놀란 가족들은 본가로 총출동. “기왕 온 거 맛있는 거 많이 해주겠다”는 어머니를 아들이 아픈 허리를 걱정하며 만류한다. 그러자 시어머니 왈. “누가 내가 한댔니?(며느리가 해야지)”

이 만화의 문제적 장면은 또 있다. TV 앞에 아빠와 아들이 볼륨 있는 몸매의 인기 여자 아이돌을 구경하느라 넋을 놓고 서있다. 둘은 아이돌의 애교를 칭찬하더니, 급기야 지나가던 엄마와 비교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자극받은 엄마는 “아이잉~”하고 덩달아 애교 부리기에 나선다. 다른 편에서도 부자가 엄마의 ‘뱃살’을 갖고 투덕거리는 등 보기 불편한 장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물론 이 로봇 변신 만화에서 꼬마들이 관심 있는 건 허리가 유난히 잘록한 여자 아이돌 가수의 등장이나 시어머니, 며느리 사이의 기싸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만화가 ‘여성을 대하는 방식’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까 우려스러운 건 사실이다.

어린이 만화영화를 살펴보다보면 편견 섞인 장면들이 쉽게 눈에 띈다. 여자 캐릭터 자체를 보기 힘들기도 하고, 그나마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허리와 가슴이 강조된 복장을 하고 있다. 대부분 힘 없고, 남자 캐릭터들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그려지는 건 덤이다. 실제 지난해 한국양성평등진흥원이 어린이 만화영화를 조사한 뒤 “6세만 되도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형성되는 만큼 제작과 시청 모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도 그 때문이다.

얼마 전 미국의 장수 만화영화 ‘세서미 스트리트’에서는 자폐아동 캐릭터 ‘줄리아’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친구가 인사를 해도 별 반응이 없거나, 가끔은 친구가 술래잡기에 끼워줬다는 이유만으로 유난스럽게 기뻐하기도 한다. 세서미 스트리트 측은 자폐증 어린이가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하기 위해 각종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통해 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 만화를 보며 자란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자폐증 친구에 대해 열린 태도를 지니게 될 것이라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었다.

남녀 불문하고 ‘차별적’ 발언과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본인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인식 자체를 못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오랜 시간 차곡차곡 잘못된 이미지와 정보들이 쌓여 “이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을 심어준 탓일 것이다. 집안일이나 뱃살로 엄마를 놀리는 유머, 아이돌의 애교 부리기나 가슴골 파인 복장 따위가 요즘 유난히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