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현대차그룹이 지난달 28일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에서도 ‘승부사 정몽구’의 면모가 드러난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내용은 시장이 예상했던 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순환출자가 재벌그룹 총수 일가의 지배권을 유지하고 승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룹은 현대차그룹 하나뿐”이라며 콕 찍어 압박을 해오던 터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깜짝 놀란 것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예상해온 지주회사 체제 대신 사업지배회사 체제를 선택한 점이다.
정 회장이 양도세를 1조 원 이상 절약할 수 있는 지주회사 카드를 버린 결정적인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지주회사는 금융계열사를 거느릴 수 없다는 규제 때문에 현대캐피탈을 매각해야 하는데, 현대캐피탈은 현대·기아차의 판매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할부금융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둘째, 현대모비스가 지주회사로 바뀌면 자회사인 현대차와 손자회사인 기아차는 투자와 인수합병에 심각한 제약을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M&A를 통해 격렬한 지각변동이 이뤄지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
현대·기아차의 이번 지배구조 개편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이 지배구조의 정점인 현대모비스의 대주주로 처음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 이로써 정 부회장은 그룹 내에서 활동공간이 크게 넓어졌다. 지금까지 정 부회장의 조심스러운 행보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지만, 시장에서는 “승계 준비가 가장 안 된 그룹”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생산해왔다. 정 부회장의 역할 확대는 시장의 걱정을 덜어주는 동시에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요즘 현대차와 기아차의 품질에 대해서는 “벤츠나 렉서스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승차감에 비해 하차감(차에서 내릴 때 주위에서 던지는 부러운 시선에 대한 느낌)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직은 대체적인 평가다. 승용차를 살 때 브랜드 평판과 디자인 등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은 젊은 층일수록 강하다. 품질에 대한 정 회장의 집념에 정 부회장의 젊은 감각이 더해져야만, 승차감보다 하차감을 중시하는 소비자 시류(時流)에 현대·기아차가 올라탈 수 있다.
천광암 편집국 부국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