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작가 코엘류와 세계 여행
파울루 코엘류의 영혼을 뒤흔들어 작가로 변모시킨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동아일보DB
브라질의 작은 출판사에서 낸 ‘순례자’(1987년)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는 기적은 그렇게 시작됐다. 세속적 성공을 좇던 남자는 1986년 프랑스부터 스페인까지 700여 km에 달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영혼을 이야기하는 작가로 다시 태어났다. 행운의 나비가 이끄는 순례자의 여정으로 시작하는 ‘연금술사’(1988년)에는 삶의 비밀이 담겼다. 170개국에서 2억1000만 권 이상 팔린 이 소설로 인해 한적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적 관광명소로 급부상했다.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코엘류는 천식을 앓던 예민한 아이였다. 아버지는 작가를 꿈꾸는 큰아들에게 법학 공부를 강요했다. 부모에게 반항하며 17세부터 정신병원을 3번이나 드나든 그는 마약과 히피문화에 빠졌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1998년)에서 세밀하게 묘사된 정신병원 장면은 고통스러웠던 청년기가 투영돼 있다. 여성 편력도 상당해 공식 결혼은 3번이지만, 20대부터 수많은 여성과 동거했다. 성행위 시간을 상징하는 ‘11분’(2003년), ‘불륜’(2014년)은 생생한 체험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어느 날 브라질 빈민가에서 봉사하는 여성 수도자를 만난 직후 수십 명이 한꺼번에 죽는 참사를 목격한 그는 충격에 빠진다. 독일 유대인 수용소에서 본 환영과 영적 스승과의 만남도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고통스러웠던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계를 떠돌았던 그는 말한다. ‘흉터는 일종의 축복이다. 과거로 돌아가거나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하면 되니까.’
김이재 지리학자·경인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