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위원회(KBO) 퓨처스리그(2군) 기록위원인 송형민 씨가 기록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야구 선수로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야구 역사를 기록하는 역할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역촌 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어린이 신문에서 ’충암초에서 야구부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 학교를 찾아가 테스트를 받고 야구 유니폼을 입었다. 야구는 내 운명 같았다.
그라운드에서 공을 치고받고 달리는 게 좋았다. 충암 중·고교에서 내야수를 맡았다. 수비는 곧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타격은 좀 부족했지만…. 고교 3학년 때 전국대회(대통령배) 4강에 들었다. 프로에 도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학(인하대 체육교육학과) 진학을 선택했다. 프로에서 나무 배트에 적응하기엔 아직 부족한 게 많았다. ’대학에서 힘과 기술을 연마해 멋지게 프로 무대에 서자‘고 다짐했다.
내 전부인 야구를 포기할 순 없었다. 이듬해 손지환 김진우 선배와 함께 일본 독립리그 코리아해치(오사카)에 입단했다. 여기서 많은 걸 배웠다. 프로리그 진입에 실패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실력은 뛰어났다. 타석에서 어떤 공을 노려야 하는지 준비하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그렇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해 프로야구 한화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또 낙방.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했다. 내 나이 스물다섯 살. 현역 입대를 선택했다.
제대한 뒤에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대학 때 교원자격증을 딴 것으로 은평초등학교에서 스포츠강사로 일했다. 임시직이라 언제 잘릴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나날들.
어느 날 한 친구가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주최하는 전문기록원 과정을 함께 해보자고 했다. 귀가 솔깃했다. 중학교 때 감독님이 야구 기록 강습회를 보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고된 훈련 대신 기록지 작성법을 배우는 게 낫겠다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2015년 초 전문기록원 과정에는 70여명이 참가했다. 나 같은 전직 야구선수는 물론 회사원, 야구팬 등 다양한 이들이 참여했다. 그러던 중 ’성적 우수자 2명을 기록위원으로 선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장 실습, 세미나 등 4회에 걸친 면접 끝에 최종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내 운명 야구와 다시금 인연을 맺는 순간이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퓨처스리그(2군) 기록위원인 송형민 씨가 기록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는 “야구 선수로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야구 역사를 기록하는 역할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선수에서 기록위원으로 제2의 야구인생
KBO 기록위원회는 총 17명. 기록위원장을 제외한 고참 10명은 2인 1조로 1군 5경기에 투입된다. 나머지 6명은 퓨처스리그(2군) 경기를 맡는다. 입사 4년 차인 송 위원은 2군 담당이다. 선수였던 그가 기록위원으로 바라본 야구는 어떤 모습일까.
“경기장 뒤에서 선수들의 기록을 정리하는 과정은 색다른 재미가 있어요. 선수로 15년을 뛰었던 경험이 있어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쉬웠죠. 프로야구의 역사를 남기는 역할이라 자부심도 느꼈고요.”
송 위원은 지난해 아시아챔피언리그에선 기록위원이 아닌 전력분석을 맡기도 했다. 일본 미야자키에서 일본 대표팀 연습경기를 지켜보며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했다. “외국팀 선수들의 특징을 분석해 한국 대표팀에 알리는 작업이 신선했어요. 일본 외야수가 어깨가 강하다거나 누가 선발진에 오를지를 정리했죠. 한국이 준우승에 그친 게 아쉬웠지만….”
송 위원은 일본 투수력이 강했다고 했다. 1군 선수가 아님에도 대부분 시속 145~148km 강속구를 던지는 게 놀라웠다는 거다. “일본 투수들은 거의 초구를 직구로 던졌어요. 공 5개를 던지면 그 중 4개는 직구였죠. 반면 우리는 변화구를 던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본이 우리보다 기본기를 더 중시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1군은 2명의 기록위원이 함께하지만 2군은 홀로 모든 걸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2군 기록위원은 심판들과 함께 움직인다. 2군 경기는 오후 1시에 열리지만 2시간 전에 경기장에 도착한다. 낮 12시에 팀 오더를 교환하면 기록지 작성이 시작된다. 주심이 스트라이크, 볼, 아웃, 세이프를 판단하지만 기록위원의 판정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안타가 실책으로 바뀌기도 하고 홀드와 세이프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서다.
2군 기록위원은 전광판도 체크해야 한다. 사람이 부족해 홈팀 선수 한 명이 전광판 조작을 맡는다. 물론 기록위원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경기가 끝나면 심판들과 간단히 식사를 한 뒤 숙소에서 TV를 켠다. 1군 저녁 경기를 보며 논란의 순간 등을 꼼꼼히 살펴본다. 송 위원은 “2군 경기는 프로 10개 구단과 상무, 경찰청 경기까지 전국을 돌며 챙겨야 한다. 피곤한 일상이지만 다양한 야구 규칙을 배울 수 있어 보람도 크다”고 했다.
기록위원들은 시즌이 끝나도 쉴 틈이 없다. 겨울에 기록강습회와 전문기록원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올 1월 건국대에서 열린 기록강습회에는 300여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송 위원은 “일반인은 물론 여성들이 행사에 많이 참여해 놀랐다”고 전했다.
송 위원은 대학 시절 스승인 김상진 감독이 “항상 공부하는 선수가 되라”는 말을 가슴에 담고 산다. 그는 “선수로 빛을 보진 못했지만 야구 기록자로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