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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쌓인 재활용품, 거실 절반

입력 | 2018-04-03 03:00:00

4인가족 24시간 들여다보니
택배 배달음식 마트상품 포장… 매주 버려도 또 두손 가득 쓰레기
정부 “수거 재개” 일방 발표 논란




사진=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그래픽=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2일 오후 서울 양천구 A아파트. 30m² 남짓한 거실에 구겨진 비닐과 스티로폼, 페트병, 플라스틱 용기 등이 모아졌다. 휴일이었던 1일 낮부터 약 24시간 동안 이모 씨(55·여) 집에서 ‘생산된’ 재활용 쓰레기다. 펼쳐놓으니 거실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일요일에 도착한 택배, 외식 대신 주문한 배달음식, 마트에서 구입한 저녁 반찬거리가 담겨 있던 포장들이다. 일반 가정에서 재활용품 없이 살기는 하루도 불가능하다. 비우고 또 비워도 매주 수거일마다 두 손 가득 쓰레기를 들고 나간다. 이 씨 가족도 마찬가지다.

1일 낮 12시 이 씨는 평소처럼 운동 후 집으로 오면서 가족 간식인 떡을 샀다. 작은 떡 하나에만 세 종류(스티로폼, 비닐 랩, 비닐봉지)의 포장이 사용됐다. 국내 1인당 비닐봉지 사용량은 연평균 420개. 핀란드의 약 100배, 아일랜드의 약 20배다.

오후 3시 마트 배송기사가 현관 벨을 눌렀다. 문 앞에 2L짜리 생수 페트병 6개가 있었다. 이 씨 가족은 정수기를 쓰지 않는다. 관리가 까다롭고 위생문제도 의심스러워 10년 넘게 생수를 주문해 먹는다. 가족이 모인 주말에는 식수와 조리를 위해 하루 2, 3개를 비운다. 재활용 바구니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항상 페트병이다. 다른 지역에서 플라스틱 수거까지 거부한다는 말에 이 씨는 “정수기는 여전히 싫고, 페트병 생수를 안 마실 수도 없고…. 뭘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 쓰레기 유발 과잉포장… “비쌀수록 더해” ▼

주말에는 집집마다 재활용 쓰레기 배출이 급증한다. 가족이 함께 있으면서 배달음식을 주문하거나 마트에서 일주일 치 장을 보는 경우가 많다. 이 씨도 이날 오후 6시 마트를 찾았다. 저녁식사를 위해 생선과 삼겹살, 상추와 파 같은 채소, 사과와 딸기를 샀다. 생선과 삼겹살은 스티로폼 용기에 비닐 랩으로 포장됐다. 딸기는 스티로폼 용기에 비닐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그나마 상추와 파, 사과는 크기가 각각 다른 비닐봉지에 들어 있었다. 이 씨는 “유기농이나 친환경 상표가 붙은 과일이나 채소는 하나하나 낱개 포장된 경우가 많다. 비쌀수록 포장이 더 요란한 것 같다”고 말했다.

2일 오전 10시 책 2권이 집으로 배송됐다. 이 씨는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온라인으로 책을 구입한다. 구겨지거나 찢기는 걸 막기 위해 책은 두툼한 에어캡(뽁뽁이) 속에 들어있었다. 낮 12시 친한 손님이 찾아왔다. 외식 대신 분식집에서 라볶이와 김밥 등을 주문했다. 크고 작은 스티로폼 그릇 4개와 종이상자 1개에 담긴 음식이 도착했다. 단무지는 비닐에 들어 있었다. 이 씨는 “관리사무소에서 앞으로 일회용 스티로폼은 따로 배출해야 한다는데 이렇게 국물 묻은 그릇을 버려도 될지 안 될지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혼란은 이 씨만 겪는 게 아니다. 서울 및 수도권 대부분 그리고 지방의 일부 주민도 똑같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다급해진 정부는 수거 거부 업체 37개와 협의해 2일부터 재활용 쓰레기 수거가 재개된다고 밝혔다. ‘쓰레기 대란’을 피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안도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이날 본보가 서울의 아파트 단지 10곳을 돌아본 결과 환경부 방침에 따라 쓰레기 수거가 재개된 건 단 두 곳이었다. 대다수 수거 업체들은 “모든 업체가 다시 수거하는 것처럼 발표했는데 우리는 그럴 계획이 없다” “정부 지침을 지킬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정부는 뒤늦게 수거 업체와 직접 협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쓰레기 대란 직전까지 손놓고 있던 정부는 뒤늦게 내놓은 대책마저 졸속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구특교 kootg@donga.com·조응형·이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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