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남측 예술단의 평양 공연에서 가수 최진희가 부른 ‘뒤늦은 후회’가 북측에서 불러달라고 직접 요청한 곡이라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최진희에게 “그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는 것이다. 이 노래는 남매 듀오 ‘현이와 덕이’의 1985년 발표곡이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히트곡 ‘너 나 좋아해 나 너 좋아해’에 묻혔던 곡이어서 최진희도 “노래가 뭔지 몰랐고, 왜 내 노래도 아닌 걸 불러야 하는지 몰랐다”고 했다. 이 노래는 3일 발표 33년 만에 한 음원사이트에서 실시간 인기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윤상 남측 예술단 음악감독이 “북한에서 인기가 많은 곡”이라고 소개한 이 노래는 발표 연도로 볼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애창곡일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은 일본 노래 ‘미치즈레(동행)’나 남한 가요 ‘사랑의 미로’(최진희) ‘하숙생’(최희준) ‘그때 그 사람’(심수봉) 등도 좋아했다. 납북됐다 탈출한 배우 최은희는 김정일의 요청으로 패티 김의 ‘이별’을 불렀다고 밝힌 적도 있다.
▷김정일의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은 “노래는 혁명 승리의 상징이며 노랫소리가 높아야 나라가 흥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노래하는 모습은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2015년 북한 조선중앙TV가 생전에 ‘사향가(思鄕歌)’를 부르는 장면을 방송한 것이 거의 유일하다. 1929년 김 주석이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노래다.
▷김정은의 형 김정철은 잘 알려진 대로 에릭 클랩턴의 팬이지만, 김정은의 음악적 취향이 드러난 적은 없다. 하지만 ‘창밖에 내리는 빗물소리에 마음이 외로워져요,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라는 가사에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독재자의 고독 같은 것이 느껴진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3대 세습으로 폐쇄된 전체주의 체제를 물려받은 그가 ‘뒤늦은 후회’를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주성원 논설위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