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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조지 오웰과 현대판 빅브러더

입력 | 2018-04-04 03:00:00


영국의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1748∼1832)은 1791년 죄수를 효율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파놉티콘(원형 감옥)을 설계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1975년)이라는 책에서 정보통신망이 마치 파놉티콘처럼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회를 비판합니다. 일찍이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1903∼1950·사진)이 1949년에 쓴 책 ‘1984년’에서 말한 빅브러더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빅브러더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회를 감시하고 통제합니다. 부처님 손바닥이 따로 없습니다.

누군가 나의 행적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있는 소름 돋는 상황이 실제 일어났습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진영의 정치 컨설팅업체가 페이스북 이용자 5000여만 명의 개인 정보를 유용해 선거 전략에 이용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 업체는 영국의 케임브리지애널리티카(CA)라는 회사입니다. CA는 알렉산드르 코건 케임브리지대 심리학과 교수가 만든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개인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에게 소정의 대가를 주고 ‘디스 이즈 유어 디지털 라이프(this is your digital life)’라는 앱을 내려받도록 유도했다고 합니다. 성격 검사 앱으로 포장되었지만 사실은 교묘히 설계된 개인 성향 분석 알고리즘이었습니다.

5000여만 명의 성향 분석을 토대로 CA는 상대 후보의 약점을 부각하는 기사나 광고를 누구에게 보낼지, 특정 유권자가 어떤 선동 문구에 반응할지, TV 광고를 어떻게 만들지, 트럼프가 어느 지역에서 유세를 해야 효과가 클지 등의 맞춤형 전략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CA 측은 페이스북 이용자의 친구 목록이나 ‘좋아요’를 누른 항목 등 다양한 활동을 분석했습니다. 그들의 소비 성향에서부터 관심 있는 사회 이슈, 정치·종교적 성향 등을 파악했습니다. 당시 근무했던 데이터 과학자들은 ‘이렇게 수집한 정보가 당신의 아버지나 애인이 당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정확하다’고 평가했다니 끔찍합니다.

사상 최악의 데이터 스캔들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페이스북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는 조만간 미국과 영국 의회 청문회에 출석할 것으로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으로부터 탈출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연결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은 페이스북이 너무 사람들을 연결해 놓은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대판 빅브러더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디지털 발자국은 늘 감시당하고 있습니다. 각종 소셜미디어뿐 아니라 폐쇄회로(CC)TV, 차량용 블랙박스 등은 현대판 텔레스크린이자 파놉티콘입니다.

앞으로 미국에 가기 위해 비자를 신청하는 사람은 과거 5년간 사용한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한마디로 개인의 디지털 흔적을 미국 정부가 미리 들여다보겠다는 겁니다. 테러 등 외부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라고 하지만 비자 신청자들의 입장에서는 꺼림칙할 일입니다.

현대판 빅브러더 앞에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잊힐 권리 등 개인의 인권이 지나치게 경시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빅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빅찬스가 될 수도 있고 빅브러더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