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허술한 초등교 안전]인질극 다음날 초등교 12곳 가보니 신분증 요구한 학교도 곳곳 ‘구멍’, 후문 열어놓고 지키는 사람 없어 교실까지 맘대로 들락날락 학교 보안관 “신분증 요구하면 화내는 학부모에 우리도 곤혹”
활짝 열려 있는 정문 서울 방배초등학교 인질극 발생 하루 후인 3일 오전 수업이 진행 중인 서울 A초등학교의 정문이 활짝 열려 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어디 가시죠?”
3일 오전 11시경 서울 성북구 A초등학교 정문을 지나 막 운동장에 들어서던 본보 기자의 뒤에서 누군가 물었다. 돌아보니 60대로 보이는 경비원이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기자 앞으로 다가왔다. 얼떨결에 “1학년 3반 학부모인데요”라고 말하자 경비원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인질극 때문에 보안을 강화하라고 해서 여쭤봤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경비원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름도 묻지 않고 신분증 제시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미소를 지으며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마침 학교는 쉬는 시간이었다. 학생들 사이로 교사 여러 명이 복도를 오갔다. 기자가 20분 넘게 교무실과 교실, 음악실 등을 둘러보는 동안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다.
아무도 제지 안해 3일 서울 B초등학교 복도에서 학생들이 뛰어놀고 있다. 이날 기자는 별다른 제지 없이 학교 복도까지 들어갔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본보 기자 2명은 3일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서울의 초등학교 12곳을 방문했다. 무사히 교문을 통과한 건 7곳. 이 중 5곳은 교문에서 건물 안까지 가는 데 어떤 확인 절차도 없었다. 다른 2곳은 교문에 있던 경비원이나 보안관이 신원을 물었다. 하지만 출입기록을 작성하거나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았다. 학교 건물에 들어간 뒤 짧게는 15분, 길게는 30분가량 복도를 오간 뒤에야 교직원으로부터 신원을 묻는 질문을 받았다.
기자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 학교는 5곳에 불과했다. 이곳에도 빈틈은 있었다. 이날 오후 1시경 기자가 서울 영등포구 B초등학교 정문으로 들어서자 우측 보안초소에서 학교 보안관이 나왔다. 그는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으며 꼼꼼하게 신분 확인을 요구했다. 규정대로였다. 하지만 이 학교 후문 출입구는 개방돼 있었다. 보안초소와 보안관이 없는 곳이다. 후문을 통과해 50m만 가면 복도에 도착한다.
일부 보안관은 “방배초등학교 사건 때문에 경계를 강화했다. 어제와 오늘 상황이 다르다”며 인적사항 기재를 요구했다. 하지만 기자가 적는 내용의 사실 여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서울 강북구 C초등학교 보안관은 기자가 “2학년 3반 학생 삼촌”이라고 둘러대자 교무실에 확인하지 않고 바로 출입증을 내줬다.
美선 벨 눌러야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벨을 누른 후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있다. 사진 출처 보안업체 캠퍼스 세이프티 홈페이지
교육 당국의 오락가락 행정도 일선 학교에 혼란을 주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일선 초등학교에 주민 편의를 위해 방과 후와 주말에 학교 시설을 개방하라고 권장해 왔다. 하지만 2일 방배초등학교 인질 사건이 일어나자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한 초등학교 교감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교뿐 아니라 학부모도 불편을 감수하고 규정을 지켜야 학생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강욱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편리한 것만 추구하면 보안이 약화되고 결국 인질 사건 같은 범죄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학교 보안관의 질과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 은퇴자 정책으로 마련된 일자리라 55세 이상부터 70세 이하에게만 자격이 주어진다. 1년 계약직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급여가 적고 계약직이다 보니 나이 드신 분들이 소일거리 삼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예산을 적극적으로 투자해 전문성 있는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김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