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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의 중국 살롱(說龍)]<24>북한 핵은 어느 길을 가나

입력 | 2018-04-04 09:43:00

이란 리비아 우크라이나 남아공이 갔던 ‘핵폐기’의 길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정상회담과 5월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처리방향에 대해 어떤 합의가 도출될 지 초미의 관심이다.

북한은 지난해 6차 핵실험으로 수소폭탄급 핵폭탄을 개발했고 탄도미사일은 사거리 1만km 이상으로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핵 미사일 무력을 완성했다고 공언했다. 북한에 대한 제재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25~28일 전격적으로 베이징(北京)을 방문해 26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만나 “한미가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취하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방법이 어떤 내용이 될 지는 남북 및 북미 회담을 거치면서 구체화될 전망이다. 최소한 ‘단계적으로 보상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진행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마크 내퍼 주한미국 대사 대리는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미클럽 긴급 간담회를 갖고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가 북한과 만나는 목적은 바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필요하고 이것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대북 강경론자인 존 볼턴 신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최근 “김정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려고 하는 것은 시간 벌기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공화)이 1일(현지 시각)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전했다.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 탑재 미사일을 보유하려면 9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그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회담을 잇따라 예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퍼 대리 대사와 볼턴 보좌관의 발언 등은 백악관과 공화당 지도부가 북핵 문제를 속전속결로 끝내기를 바라고 있으며 ‘선 비핵화 후 보상’의 리비아식 해법을 선호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만으로도 북한과 미국이 구상하는 북한 핵 처리 방법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어떤 접점이 찾아질지 관심이다.


이처럼 북핵 처리 방안이 관심인 가운데 지금까지 핵을 개발하거나 보유했다가 중단 혹은 폐기했던 국가들의 경험이 주목받고 있다. 북한 핵 처리의 방향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핵 개발 단계나 보유 목적, 처리 방향 등이 각기 달라 그대로 적용할 수 없지만 지구상에 등장했던 핵이 지금까지 어떻게 처리됐는지에 대한 인식이 시사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핵을 개발하거나 보유했다가 중단 혹은 폐기한 대표적인 국가는 이란 리비아 우크라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4개국이다.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거나 중도에 포기 혹은 핵무기를 보유했다가 폐기한 국가는 20여개국에 이르는 것으로 학자들은 추산한다.

이란 리비아 우크라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4개국은 핵보유 이유와 폐기, 폐기 후의 상황 등이 많이 달랐다.

이란 핵 합의 2015년 4월 핵 합의 후 스위스 로잔에서 회견 준비하는 미국 영국 이란의 외무장관

이란은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 시절을 운영하던 사실이 드러나 서방의 제재와 압력을 받다가 제제 해제 등을 조건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독일 등 6개국과 합의로 핵개발을 포기했다. 다만 핵무기를 보유하는 단계에 이르기 전 핵시설과 핵물질 등을 폐기해 사실상 핵개발을 중단 포기한 것이어서 개발이 끝난 핵을 폐기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리비아는 오랜 기간 핵 제조기술과 핵물질을 도입해 핵무장을 하려다 유엔과 미국의 제재로 마지막 단계에서는 자발적으로 포기했다. 먼저 핵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하고 철저한 이행 감시를 받고 경제제재 해제 등 보상을 받아 미국 보수파는 바람직한 핵처리 사례로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리비아의 무하마드 카다피 국가 원수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발생한 내전에서 반군에 체포돼 처형됐다. 그가 핵을 포기한 것은 외부적인 압력에 의한 것이지만 내전에서 패한 데는 핵무기가 없었던 것도 한 요인이 됐다.

리비아의 무하마드 카다피 국가원수


북한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로 ‘리비아 카타피 운명’을 사례를 든다. 핵은 외부로부터의 안전과 함께 국내적으로도 독재 권력을 지키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된 뒤 독립할 때 많은 양의 핵 무기를 ‘물려 받은’ 우크라이나는 한 때 러시아의 위협 등을 이유로 계속 보유하자는 논의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영국 러시아가 안전보장을 약속하고 이어 프랑스 중국까지 가세하면서 핵의 필요성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1900개의 전략 핵탄두와 2300여기의 전술 핵무기를 모두 폐기하거나 소련에 인계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국내 원전 15기에 사용하는 우라늄 연료를 모두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사용후 핵연료도 전부 러시아로 반출하고 있다.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원심분리기 등의 시설도 없다.

폐기되는 우크라이나 ICBM


그런데 러시아는 안전보장 약속에도 불구하고 2014년 크림 반도의 크림공화국을 무력 합병했다. 미국과 서유럽은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안전보장을 조건으로 맺었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는 휴지조각이 됐다. 영토 일부가 잘려 나가는 것을 지켜주지 못했다.

미 의회가 1991년 11월 27일 샘 넌 의원과 리처드 루가 의원이 발의한 ‘소련의 핵위협 제거 법안’을 토대로 수정한 ‘협력적 위협감소(Cooperative Threat Reduction·CTR)’ 법안이 우크라이나에서 모범적으로 적용됐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대국이 ‘멋대로’ 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약소국이 언제든지 강대국 이해관계에 의해 희생될 수 있다는 것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주변국 위협 등을 이유로 핵무기를 개발한 뒤 국제사회의 제재가 본격화하기 전에 스스로 폐기했다. ‘핵무기비확산조약(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체제에서 모범적인 국가라는 평가는 받을 수 있지만 개발과 폐기 등이 워낙 독특한 사례여서 북한 핵처리 등에 주는 시사점은 많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남아공은 두 차례의 핵실험까지 해서 핵을 개발했으나 드 클레르크 대통령이 스스로 폐기했다. 1980년대 말 안보위협이 감소하는 등 이유로 핵무기가 불필요하고 핵폐기로 NPT에 가입하는 등 정상적인 외교 활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적인 이익에 더 부합된다는 자체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인종차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있었지만 핵 보유에 대한 제재는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발된 핵으로 어느 국가도 위협하거나 무력 시위를 벌이지도 않았다. 남아공은 인종차별과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핵폐기로 정상국가로서 인정을 받았다.

남아공의 핵보유 동기와 폐기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없지 않다. 다만 핵보유국 증가를 막아 핵전쟁의 가능성을 줄여 세계를 보다 안전하게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져 1970년 발효된 NPT 체제하에서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참고 자료 : △‘핵 포기 국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제개발 지원경험이 북한에 주는 시사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조명철 김지연 홍익표) △‘핵폐기 사례 연구: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의 함의와 한계’(한인택) ‘한국과 국제정치’ 제27권 △‘북핵 2·13 합의와 평화적인 핵폐기 사례 분석’(전성훈), 통일연구원 △동아일보 2015년 4월 4일 1면 등 이란 핵폐기 관련 보도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