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혁·경제부
FTA 시행령에 명시된 품목이 약 20만 개나 되는 만큼 당국자가 일일이 관리하기에 어려움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주무 부처가 시행령을 개정하고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하기까지 누구도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은 채 무사통과시켰다는 점에서 국가의 검증 시스템에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 심지어 과일 수입업체들은 “2016년 5월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이야기”라고 증언하고 있다. 당시 당국은 칠레산 포도에 관세 0%를 적용해 이미 납부된 관세를 환급해 주면서 관세사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답변까지 남겼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서울세관의 한 행정관이 이를 발견한 뒤에야 시행령에 오류가 있음을 파악했다. 정부의 안이한 세정이 도를 넘어섰다.
기재부는 이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도 일부 실수가 있었다는 정도의 해명을 내놓고 있다. 단순 실수인 데다 누락한 금액이 많지 않은 만큼 너무 문제 삼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칠레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와도 교역을 하면서 제대로 걷지 못한 채 포기한 관세가 더 있을지 모른다. 수입 품목별 관세 부과 실태를 철저히 검증해 과거의 실수를 밝혀내야 한다. 세금 하나 제대로 못 걷는다면 한미 FTA 협상을 아무리 잘한들 무슨 소용인가.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