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정책 실패로 밀 생산부족, 전쟁에 군비낭비… 경제 악화 고르비 개혁도 연방해체 못막아
콩(대두)을 둘러싼 미중의 신경전은 과거 소련 붕괴 당시 미-소의 ‘밀 전쟁’을 연상시킨다. 곡물이 단순히 무역 품목을 넘어 때론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생산의 20%를 차지하는 거대 생산국이다. 그중에 러시아는 지난해 밀 수출에서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 2위에 올랐다. 그때 알렉산드르 트카초프 농업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에서 이제 밀은 석유보다 더 큰 최대 외화 수입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소련 체제에선 달랐다. 1962년부터 캐나다와 미국 곡물 메이저로부터 수입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곡물 생산성이 낮았다. 상황은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1970년대 들어서는 밀 수입으로 인한 무역수지 악화로 경제가 파탄 날 지경이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를 고비로 미-소 간에 개시된 데탕트(긴장 완화) 무드의 배경엔 소련의 이 같은 밀 생산 부족이 깔려 있었다.
소련은 실익도 없는 전쟁에 군비만 낭비하며 침체된 경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렇잖아도 심각한 만성 식량난을 가중시켰다. 결국엔 연방 유지마저 곤란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 와중에 브레즈네프마저 심장 발작으로 급서(1982년). 1985년 서기장에 오른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개혁정책으로 이 삼중고 타개에 나섰다. 하지만 그것도 역부족. 연방은 결국 붕괴(1991년 12월)했다.
물론 미중 간 ‘콩 신경전’은 과거 미-소 간 ‘밀 전쟁’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밀은 궁극적으로 수입국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동원된 미국의 곡물무기였다. 반면 콩 수입국인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팜 벨트’를 겨냥해 25%의 관세폭탄 카드를 던졌다. 즉, 수입국의 ‘관세무기’로 활용되는 양상이다.
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