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대한암학회 ‘톡투암 토크콘서트’ 폐암 환자-가족-전문가들 한자리에 모여 소통의 장
암 정복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인구 10만 명당 35.1명이 폐암으로 사망하고 있다. 폐암은 다른 암에 비해 생존율도 낮다. 폐암 환자들의 바람은 오로지 ‘사는 것’이다. 살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와 가족들은 획기적인 치료법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답답한 마음에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6일 쌀쌀해진 날씨에도 폐암 환자들과 가족들이 서울 페럼타워 3층에 모였다. 이곳에서 대한암학회는 폐암 환자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톡투암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대한암학회는 폐암 환자들의 고민 해결을 위해 ‘톡투암 토크콘서트’를 개최했다. 왼쪽부터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김혜래 서기관, 동아일보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환자패널 장호 씨, 강진형 교수, 송시열 교수, 이대호 교수, 김열홍 교수.
토크콘서트 1부에는 폐암 투병 중인 환자와 가족이 직접 무대에 나섰다. 폐암 진단을 받고 치료 중 느꼈던 여러 경험을 참석자들과 공유했다. 이들은 힘든 암 투병 중에도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보이며 행사장을 희망의 메시지로 채우는 한편 직접 마주한 어려운 치료 환경에 대해 토로했다. 무엇보다 말기 암 환자를 위한 보장성 강화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날 강사로 나선 서울아산병원 이대호 종양내과 교수는 ‘폐암, 내가 네 편이 되어 줄게’라는 주제로 폐암 진단에서 병기에 따른 치료 전략 등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이 교수는 “저의 아버지 역시 암으로 돌아가셨다”며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기 위해 치료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의사로서 환자의 힘든 치료 과정에 도움을 주고 함께할 수 있는 여행가이드인 셰르파가 되겠다”고 말하자 청중의 박수가 쏟아졌다.
어려운 폐암, 속 시원한 해답 제시
토크콘서트 2부에서는 본격적인 고민 해결 방안이 전문가들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됐다. 패널로는 김열홍 교수(고려대안암병원 종양혈액내과), 이대호 교수(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강진형 교수(가톨릭대의대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송시열 교수(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이진한 동아일보 의학전문기자, 김혜래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서기관, 환자 장호 씨가 참여했다.
조기 발견이 쉽지 않은 폐암 예방과 조기 발견에 대해서 김혜래 서기관은 “정부는 작년부터 흡연력이 30년 이상인 만 55∼74세의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저선량 컴퓨터단층촬영(CT)을 시행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며 “조기 발견에 기여했다는 결과가 있어 내년부터 본 사업을 도입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상 참여 여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강진형 교수는 “먼저 환자의 불안을 일으키는 임상시험, 임상연구라는 표현부터 바꿔야 한다”며 “임상도 치료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현재의 표준 치료 역시 앞서간 폐암 환자들의 임상 참여 결과”라며 “좋은 임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환자의 권리를 찾고 다음 환자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항암제 임상은 1상에서 독성이나 안전성 검증을 거친 후 2상 환자를 모집한다.
정신적 고통과 가족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환자의 고민에 대해서는 김열홍 교수가 “폐암은 누구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가족끼리 따뜻하게 격려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말했다.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4년 6개월 동안 투병 중인 장호 씨는 “하나의 치료가 끝나고 내성이 생겨서 다른 치료 옵션이 무엇일지 방황하는 기간이 가장 힘들었다”며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관계 등 어려움이 많지만 스스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독립적인 사고를 가지는 것이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해서 지속적인 논의 필요
특히 폐암 치료법과 부작용에 대해 질문이 집중됐다. 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폐부종이나 폐렴을 걱정하는 환자에게 송시열 교수는 “현재로서는 이러한 증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면서 “갑자기 기침이 심해지거나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빠지는 증상이 생겼다면 빨리 병원을 방문해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고 말했다. 이대호 교수는 “부작용이 없는 항암 치료는 없지만 빈도와 강도를 의사와 상담해 증상을 잘 조절하면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부작용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크콘서트에서는 폐암 치료에 있어 면역항암제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꼭 필요한 환자가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는 “폐암에 있어 면역항암제는 외국에서 1차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더디다”며 “환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절실한 환자들에게는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대호 교수는 “현재 국내 의료 시스템과 재정을 고려해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며 “학회를 비롯한 각계의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또 이 교수는 “면역항암제의 경우 다행히 다른 약에 비해 비교적 신속하게 2차 치료제로 급여 인정이 됐지만 미흡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획일적인 제도보다는 환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다양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답했다.
장호 씨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폐암 말기 환자에게 생명 윤리를 논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살기 위해 다른 치료 옵션을 찾아야 하는 절실한 환자의 목소리를 수용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열홍 교수는 “대한암학회는 환자의 편에 서서 보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정확한 정보를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후 위암을 포함해 다양한 암에 대해서도 환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도움을 주기 위한 자리를 계속해서 만들겠다”고 말했다.
“폐암, 끝이 아닌 시작”
톡투암 토크콘서트 현장 목소리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지 4년 6개월이 지난 60대 중반의 장호 씨는 여러 임상 연구에 참여했고 지금은 일상생활에 큰 문제 없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하루 지내는 동안에는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한 장 씨는 가족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 대부분의 병원 치료는 직접 운전해 다니고 있다.
70대 김광옥 씨 역시 폐암 4기 환자다. 아내와 함께 무대에 오른 김 씨는 2014년 3월 감기에 자주 걸리기 시작하면서 몸의 이상을 느꼈다. 한 달 뒤부터는 가슴과 어깨에 통증이 심해져 아내의 권유로 병원을 찾았고 6월 17일 처음 폐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일반 항암치료 초기엔 많이 힘들었지만 의사의 권유로 면역항암제 처방을 받고 나서는 통증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아내의 도움을 받아 식이조절도 열심히 한 결과 의사로부터 95% 호전됐다는 말을 듣고 다른 세상을 얻은 것 같다고 기쁜 마음을 전했다.
지난 해 갑작스럽게 폐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위해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박송이 씨의 목소리는 많이 떨렸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항암 치료를 준비했다. 독성이 강한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힘들어하실 어머니가 걱정된 박 씨는 표준항암제 대신 고가의 면역항암제를 선택했다.
9월부터는 보험 적용이 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치료 결과 어머니의 건강은 많이 좋아졌다. 2∼3번의 치료로 암도 눈에 띄게 줄었고 큰 부작용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안 좋은 소식도 있었다. 어머니가 치료 받고 있는 면역항암제가 1차 폐암 치료제로는 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동딸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박 씨의 어머니는 요즘도 면역항암제를 중단하고 표준항암제 치료를 받겠다고 말한다. 직접 주택담보대출까지 받았지만 돈 걱정에 하루하루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어머니가 안쓰러운 박 씨는 ”환자부담을 줄이는 문재인 케어가 있지만 여전히 암 환자들에겐 남의 이야기다”면서 ”환자가 필요한 약을 제때 부담 없는 가격으로 편히 쓸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