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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실무자까지 문책하는 경쟁적 적폐청산, 이젠 청산하라

입력 | 2018-04-11 00:00:00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부처별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일부 혼선이 있었다”며 “정책상의 오류가 중대한 경우 정책 결정권자들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정부 방침을 따랐을 뿐인 중하위직 공직자들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가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참여한 실무 직원들까지 무더기로 수사 의뢰를 권고해 논란을 빚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적절히 제동을 건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국정화 진상조사위는 전현직 교육부 공무원 등을 직권남용과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하고 신분상 조치를 교육부에 요구하기로 했다. 군과 검찰, 외교 등 다른 분야에서도 전 정권의 정책에 복무했다는 이유로 과한 불이익을 받는 실무자들이 양산됐다.

전임 정권의 시책 중 문제가 있는 것의 시행 과정을 면밀히 조사해 바로잡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시를 받고 그 정책 시행에 참여한 실무 공무원들을 부역자 색출하듯 처벌한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영혼 없는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불러오게 된다. 공무원들이 알아서 기다 보니 불법시위 주도 혐의를 받고 있는 수배자를 눈앞에 두고도 경찰은 뒷짐만 지고 있는 기막힌 공권력 해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진보성향 인사들이 다수 참여한 일부 부처의 적폐청산 TF는 선명성 경쟁을 벌이듯이 보수 꼬리표가 붙은 온갖 정책을 불법·부정한 것으로 몰아붙이고 관련자까지 처벌할 꼬투리를 찾아 판을 갈아엎으려는 데 혈안이 된 모습을 보여 왔다. 적폐청산의 본질을 흐리는 이런 행태에 대해 엄중히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정권이 바뀐 뒤 적폐청산 작업 자체가 또 다른 적폐로 지목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는 시스템 개혁이 아니라, 전임 정권에 대한 처벌과 ‘보수성향 정책 뒤집기’를 목적으로 공권력이 총동원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어제 “적폐청산의 목적은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정책과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는 데 있는 것이지, 공직자 개개인을 처벌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고 강조한 것은 올바른 방향 제시다. 이제는 잘못된 정책의 원인과 그것을 막지 못한 시스템상 결함을 규명해 개선책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