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 도쿄 특파원
인터뷰 기사(본보 3월 30일자 A32면)에 달린 댓글들은 그런 망설임이 기우였음을 보여줬다. 대부분이 하시다 씨의 안락사론에 공감을 표하는 내용이다. 솔직히 놀랐다. 특히 “내가 나일 수 있을 때라는 말이 뼛속 깊이 다가온다”거나 “안락사라는 보험이 있다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글들이 그랬다.
죽음이란 과거에는 공동체 내에서 벌어지는 자연현상이었다. 어른들은 때가 되면 늙고 자연의 한 과정으로서 죽어갔다. 그 바로 곁에서는 아이들이 새로 태어났다. 하지만 핵가족화가 진행되고 의술이 발전하면서 죽음은 병원 안에 가둬졌다. ‘삶’과 ‘숨만 쉬는 상태’의 괴리는 더 이상 보이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게 됐다. 우리는 막상 자신의 일로 맞이하기 전에는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 생활한다.
안락사에 찬성한 82세의 각본가는 “지금까지의 내 생에 납득하고 있다. 이별의 슬픔은 있겠지만 주위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고 적었다. 91세의 모친을 얼마 전 여읜 70세 평론가는 “마지막 1년은 불안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죽여 달라고 호소하는 엄마를 보며 정말 그렇게 해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84세의 작곡가는 “자신이 자신으로 있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들었다. 75세의 전 방위청장관은 존엄사에 한해 찬성하면서 “태어난 것도 운명이고 죽을 때도 죽음을 회피하려 말고 운명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82세의 전 NHK 회장도 “자연의 흐름에 맡겨 종말을 맞고 싶다”며 존엄사에 찬성했다.
하시다 씨는 일본에서 ‘셀럽(유명인)’이다.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평생 미친 듯이 극본을 써낸 덕에”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매일 오전 가정부 5명이 집으로 와 살림을 돌봐주고 매년 호화 크루즈 여행에 나선다.
이런 하시다 씨가 ‘안락사로 가고 싶다’며 일본 내에서 관련 논의를 해달라고 문제 제기한 것은 작가로서 사회현상에 대해 그만큼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 무거운 주제를 아주 가볍게 꺼낸다. 가령 이런 식이다. “안락사라는 ‘보험’이 있으면 더 맘껏 현재를 즐길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가령 저는 매년 해외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데, 어느 날 이렇게 돈을 써도 되나 하는 걱정이 들더군요. 혹시라도 100세를 넘겨 산다면? 그때 돈이 다 떨어져 버리면? 이런 생각을 하면 돈도 쓸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최후를 자신이 정한다는 것. 그에겐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