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철 사회부 차장
같은 여론조사 기관은 지난달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표했다. 응답자 3명 중 2명꼴인 67.5%가 이 전 대통령을 구속하는 데 찬성한다는 내용이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연달아 구속돼 재판을 받는 상황은 흔치 않은 일이다. 대중의 관심을 먹고사는 언론사나 여론조사 기관이 이런 좋은 소재를 그냥 지나치기는 쉽지 않다. 수사나 재판도 다른 국가권력 작용과 마찬가지로 여론의 비판과 감시를 받아야 할 영역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진행형인 형사 사건에 대한 여론조사는 피의자나 피고인의 공정한 수사, 재판을 받을 권리를 과도하게 위협하는 측면이 있다.
이 책이 지적하는 상황은 미국과 다른 형사재판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형사사건 보도는 대개 검찰, 경찰의 브리핑과 그들이 공개하는 증거 위주로 흘러간다. 수사를 받는 쪽은 언론과 접촉할 창구가 없거나, 이후 재판에서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까 봐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언론이 주도하는 여론의 법정은 ‘유죄 추정의 원칙’으로 움직인다는 건 틀린 말은 아니다.
사법시스템 역시 정의의 여신 디케처럼 두 눈을 가린 채 저울(법과 원칙)만으로 일하는 것은 아니다. 판사, 검사들이 기자에게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외부에서 어떻게 볼지에 대한 것이다. 법조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법률가 중에는 ‘국민의 눈높이’를 판단의 한 잣대로 언급하는 이도 드물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형사사건에 대한 여론조사가 지금처럼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곤란하다. 하급심 판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상급심 재판부에 큰 압박이 될 수 있다. 선출된 권력으로부터 인사권으로 통제를 받는 수사기관은 더더욱 여론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국회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적절한 규제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정의가 아닌 것처럼 유명하다고, 또는 돈이나 권력이 있다고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는 일도 정의는 아니다.
전성철 사회부 차장 dawn@donga.com